[World Prism] ‘두바이 찬가’의 허상과 실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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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호 30면

놀이동산에는 여러 종류의 롤러코스터가 있다. 높이 올라가는 것일수록 더 무섭고 아찔하다. 롤러코스터란 올라간 높이만큼 결국은 내려와야 하는 장치이고 꼭대기가 높을수록 내려오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경제가 꼭 롤러코스터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여러 나라의 경제 사정을 비교해 보면 롤러코스터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지난 몇 년간 유난히 경제사정이 좋았거나 자산 버블이 심했던 나라일수록 더 깊은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국가부도 상태에 빠진 아이슬란드나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헝가리·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모두 지난 몇 년 동안 호황을 만끽했던 나라들이다. 외국 자본이 물밀듯이 유입됐다. 여기저기 도로나 항만·산업시설이 건설됐다.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미래를 낙관했다. 신용카드나 할부금융 시스템을 활용해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물건을 사들였다.

그런데 이들 나라보다 세계인의 이목을 끈 나라는 따로 있다. 바로 중동의 두바이다. 이 나라는 주변 국가의 오일 머니, 유럽과 러시아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세계 최고층 빌딩(버즈 두바이)을 짓기 시작했다. 달에서 보인다고 할 만큼 거대한 인공 섬도 만들었다. 그 결과 모래사막은 마천루의 숲으로 변했다. 이를 구경하기 위해, 그리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그 뜨거운 땅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더 이상 두바이는 중동의 한 해변 도시가 아니었다. 모래사막 위에 만들어진 기적이었다. 개혁과 개방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했다. 외국 자본을 가장 성공적으로 유치한 나라로 평가됐다.

주변 산유국 등 많은 나라가 두바이 따라 하기에 열중했다. 이들 나라는 두바이가 어떻게 석유 의존 경제를 금융·서비스·교역 중심 경제로 바꿨는지 열심히 배웠다. 두바이 정부에 경제정책을 조언했던 서방 전문가들을 경쟁적으로 영입했다. 부끄럽지만 그 모방의 대열에 한국도 들어 있다. 한때 ‘두바이를 보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두바이는 거품이었다. ‘세계 크레인의 10%가 두바이에 모여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건축 붐이 불었다. 그만큼 각종 빌딩 공급이 급증했다. 부동산 가격은 끝없이 올라갔다. 사람들이 거주하기 위해 사들이는 게 아니었다. 부동산 가격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이 새로운 낙관을 낳으면서 시장이 달아올랐다. 이 열기에 취한 부동산 개발회사는 외국 은행들에서 앞다투어 돈을 빌렸다. 이 돈으로 초고층 빌딩, 수중 호텔, 초대형 놀이동산 같은 메가 프로젝트를 경쟁적으로 추진했다.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은 결국 무너지는 법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지자 외국 은행들이 두바이에서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두바이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오던 오일 머니도 빠르게 말라갔다. 올라가던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서 아래로 방향을 바꾸듯이 시장은 일순간 급변했다.

두바이 부동산 가격은 급락했다. 분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외국 은행들이 대출금을 갚으라며 부동산 개발회사들을 거칠게 압박했다. 더 이상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올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두바이는 국가부도 상황에 내몰렸다. 다행히 아랍에미리트(UAE)에 속한 아부다비 정부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지난달 18일 UAE 중앙은행을 통해 두바이에 100억 달러를 빌려주기로 했다. 구제금융이었다. 두바이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렇다고 두바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나라는 신용도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곤두박질해 더 이상 국제 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없다. 그런데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가 127억 달러에 이른다. 내년에도 비슷한 규모의 외채를 갚아야 한다. 아직도 앞길이 험난하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두바이는 구제금융을 계속 받아야 국가부도 사태를 피할 수 있다.

두바이가 지난 10여 년간 벌인 일들이 모두 신기루는 아니다. 그 가운데는 진짜 성공도 있고 거품도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점은 개혁·개방의 상징이었던 두바이 정부가 글로벌 유동성 풍년에 취해 머니게임 하듯이 경제를 운용했다는 사실이다. 그 게임의 화려함에 자신들도 취했고 세계도 취했다. 지금 그 환상이 걷히고 있다.

이제 진짜 두바이를 배워야 할 때다. 그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벌인 일 가운데 무엇이 거품이고 무엇이 진짜 성공이었는지 냉정하게 분석하면 좋은 타산지석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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