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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영혼의 초능력자, 히어로들의 번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4호 11면

‘왓치맨’ 같은 유명 히어로 만화를 섣불리 스크린에 옮기는 것은 모험 중의 모험이다. 잘해 봐야 본전이고, 본전치기마저 쉽지 않다. ‘프롬 헬’ ‘브이 포 벤데타’ ‘젠틀맨 리그’ 등 작품마다 족족 영화화됐던 앨런 무어의 원작인 ‘왓치맨’은 그래픽 노블(그림소설)계의 걸작 중 걸작으로 꼽힌다. 1988년 SF소설 최고 권위상인 휴고상을 받았고, 그래픽 노블로서는 유일하게 타임지의 ‘23년 이후 나온 100대 소설’에 선정됐다.

영화 ‘왓치맨’, 감독: 잭 스나이더, 주연: 제프리 딘 모건 등, 18세 이상 관람가

부담은 이런 외형적 권위에서만 오지 않는다. 작품에 묘사된 거대한 규모와 철학적 메시지는 영화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하기 충분했다. 결국 이 거대 프로젝트를 맡은 용자는 ‘300’의 잭 스나이더였다. 스나이더는 알려져 있다시피 클리오 상을 두 번 받고 칸 국제광고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CF 감독 출신. CF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영상미에 신경 쓰다 알맹이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왓치맨’만큼은 그런 의심을 걷어내고 음미하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코미디언’이라는 이름을 지닌 왕년의 왓치맨(제프리 딘 모건)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잇따라 과거의 왓치맨들이 습격을 당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왓치맨 암살의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를 밝혀내는 건 사실 이 영화의 큰 관심이 아니다. 과학실험 사고로 초인간적 힘을 지니게 된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 어머니의 강권으로 왓치맨이 된 실크 스펙터(말린 애커맨), 뛰어난 머리로 발명에 재능을 보이는 나이트 아울(패트릭 윌슨), 난폭하고 거친 성격을 지닌 코미디언 등 왓치맨들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넘나들며 그들의 개인사와 고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사회의 파수꾼 왓치맨의 고민은 이들이 타고난 능력이 아닌, 자신의 선택에 의해 히어로가 됐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들은 타고난 영웅이 아니라 연약하고 번민하는 영혼을 지닌 인간이다. 절대적 선이 이들의 핏줄에 프로그래밍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양면적 본능과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히어로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뼈와 살이 튀는’, 웬만한 슬래셔 무비 저리 가라 할 폭력성과 남녀 히어로의 전라 정사 장면 등 때문에 히어로물로서는 드물게 18세 이상 관람가를 받았다. 빗물 한 방울, 바람에 휘날리는 전단지 한 장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뛰어난 영상미가 2시간41분이라는 다소 버거운 관람 시간을 웬만큼 버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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