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월요인터뷰]아시아만화대회 대회장 정운경 화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이기 뭐 이린기 다 있노. "

개그우먼 김효진을 이른바 뜨게 한 유행어다.

김효진은 이모 곧 아지매가 천방지축 뛰는 조카를 야단치는 말을 개그화했다고 한다.

경상도 아지매라면 누구나 애용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말에는 조카를 향한 아지매의 완벽한 사랑이 배어 있다.

'왈순아지매' 를 보는 재미는 아지매의 세상을 향한 '이기 뭐 이린기 다 있노' 에 있는 듯하다.

그 '이런 것들' 에는 아지매네 가장도 결코 예외가 되지 않는다.

큰 기업의 고참과장 혹은 부장쯤 돼보이는 이 가장은 대체로 선량하고 가끔 약고 좀 시니컬한 소시민적 샐러리맨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이번 대선에서는 그렇게 안하겠지만 그는 지난 선거 때는 새 지갑을 준비해 소줏값이라도 기대하는 싱거운 구석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아지매는 다르다.

우리는 아지매가 손에 물 안묻히고 노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성격도 단순명쾌하다.

이웃집 아주머니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키득거리며 농담도 즐기지만, 곧 다가올 김장철에 만약 아지매네 집에 강도가 든다면 지난번 (90년 만화) 처럼 당장 무 썰던 식칼을 쳐들어 쫓아내 버릴 것이다.

이 가장의 소시민성과 아지매의 정직성이 어울려 일궈내는 풍자와 해학이 바로 '정운경 (鄭雲耕) 왈순아지매' 의 미학이요 정수다.

중앙일보 창간 32주년을 맞아 중앙일보 간판스타의 대표격인 鄭화백을 만나 왈순아지매의 세계를 듣는다.

마침 鄭화백은 24~30일 세종문화회관.서울시립미술관에서 아시아 9개국 3백여명의 유명 만화가가 참가하는 아시아 만화대회의 대회장을 맡았다.

그의 만화가 이제는 아시아를 대표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鄭화백의 본명은 광억 (光億) 이다.

운경이라는 이름은 청주고 3학년 시절 불경에 심취해있던 죽마고우로부터 얻었다.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를 묘사한 '서운경각 (瑞雲耕覺)' 에서 따온 이 말은 하루하루 '깨달음' 을 필요로 하는 일간지 시사만화가를 표현하기에 더 할 나위없이 적합하다.

- 왈순아지매의 탄생배경을 궁금해 하는 독자가 많습니다.

"본명은 월선 (月仙) , 고향은 경남 어디쯤 입니다.

50년대 후반 여성지 '여원' 의 편집장이던 소설가 최일남씨로부터 가정만화 연재 제의를 받았어요. 그래서 '고바우' 나 '두꺼비' 처럼 나를 대표할 만한 주인공 캐릭터와 이름을 찾아야겠는데 도무지 안떠올라요. 두어달 가까이 서울시내를 쏘다니고 전화번호부를 눈이 빠지도록 쳐다 보며 이름들을 조합해 보기도 했지만 별무 소용이었어요. 그런데 마감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청량리에 사는 사촌형님네를 들렀는데 거기 있었습니다.

커다란 덩치에 시원시원한 말투로 형수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그 아낙을 보는 순간 '바로 저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죠. 왈순은 월선이라는 그 아낙의 이름을 요즘 말로 패러디한겁니다. "

- 처음에는 식모 아니었나요. 그런데 언제 결혼해서 가정을 차렸습니까. (가정부는 식모를 순화한 표현이다. 구봉서 주연의 '남자식모' 라는 영화도 있었다. )

"처음 왈순아지매 집에는 주인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사 과장 월급으로 어떻게 식모를 둘 수 있느냐는 지적에 80년대 중반쯤 슬그머니 부인을 후퇴시켰죠. 주인공을 뺄 수는 없잖아요. 아지매와 남편만 나오니 아무래도 어색했는지 당시 김동익 중앙일보 사장은 아예 둘을 결혼시키자고 제의할 정도였죠. 하지만 그러면 불륜이 돼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제가 반대했죠. 그럼 다른 사람과 결혼시켜 옆집에 살도록 하자. 뭐 이렇게 말이 오가다가 그냥 흘러왔습니다. "

- 신문에 얼굴이 크게 나가면 아지매네 가장과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겠습니다.

"만화가하고 그가 그린 만화 주인공이 대부분 비슷합니다. 아무래도 거울로 내 얼굴을 자주 보게 되니까 그게 만화에 반영되는 듯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도 제일 먼저 그런 소리를 듣습니다.

만화주인공은 그 만화가의 분신이랄 수도 있어요. " - 왈순아지매의 풍자는 활기가 느껴집니다.

시니컬하면서도 부드럽게 비트는 맛이 일품입니다.

"신문이 밥상이라면 시사만화는 소금이나 후추같은 양념입니다. 그게 들어가야 음식 맛이 나죠. 신문기사가 다룰 수 없는 것을 다루되 해학을 맛뵈기로 해서 유머와 위트로 살을 붙입니다.

시사 만화는 시니컬한 점이 주된 요소죠. 하지만 비웃는 게 아니라 풍자를 강조해 다른 만화에 비해 차별성을 가질려고 합니다. "

- 어떤 차별성을 말합니까.

"시사만화는 주로 스트레이트로 상황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힘은 있지만 재미는 없게 되지요. 우리 정치인들은 웅변조지만 외국인들은 유머를 통해 청중들에게 재미를 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시사만화도 부드러운 웃음, 즉 해학을 통해 의사를 전달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 수십년간 어떻게 매일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내는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소재 구하는게 고통스럽겠습니다.

"신문도 통독해야 하고 책도 계속 봐야 하고 잡지.시사지.주간지도 가능한 빼놓지 않고 일습니다.

사람 만나는 일도 큰 일입니다.

6.25때 대구로, 부산으로, 청주로 고등학교를 많이 옮겨 다녔어요. 그때 사귄 동창들이 지금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데 이들과 만나 좋은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이곳저곳 걸어 다니면서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번은 여의도 집까지 걸어 가면서 구상합니다. 외국에 나가면 꼭 시장을 들르는데 서울은 도시 전체가 시장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장에서 소재를 찾는 셈이지요. "

- 마감시간은 다가 오고 아이디어는 없을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참담하지요. 화장실에 앉아 있기도 하고 윤전기 옆에 서서 굉음을 들으며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합니다. 젊었을 땐 머리를 쥐어 뜯는 버릇도 있었습니다. 미리 여유있게 만들어 두면 될 것도 같지만 시사만화라는게 급한 사건이 생기면 그려 놓은 그림은 버리게 됩니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메워왔으니 오늘도 메워지지 않겠느냐는 기분만이 나를 편하게 합니다. "

- 진공청소기 시대에 빗자루질, 화날 땐 늘 소주 한병에 오징어 한마리여서 지금 시속과는 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 성향이 보수적인지는 몰라도 너무 시속을 쫓아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 우리 식탁에는 된장이 있고 김치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좀 더 오래된 생활습관, 나아가 전통적 가족제도나 사회적 인식.윤리를 오래 지니고 싶을 뿐입니다. "

- 언젠가 백기완씨를 만났더니 왈순아지매에 술 한잔 같이 하고 싶은 사람으로 자신이 등장했다고 좋아 하더군요. 독자들 반응이 대단하죠. "백기완씨와는 그 일로 실제로 술 한잔 했습니다.

전화가 많이 옵니다. 아이디어 준다는 사람도 많구요. 몇년전 아파서 며칠 쉰 경우가 있었는데 어떤 독자가 전화를 했어요. 매주 일본을 다녀온다는 것으로 보아 오퍼상이 아닌가 싶은데, 어느날 만화가 계속 안나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음란으로 눈이 가더라는 거에요. 다시 만화가 나오는 것을 보고 반가워 전화한다고 하더군요. "

- 정치관련 소재는 반응이 민감하지요.

"확실히 부담이 많이 생깁니다. 하지만 일단 그리면 지면에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있습니다. 조금 강도가 있고 제대로 얘기를 했을 때는 반응이 참 좋죠. 외국 시사만화들은 우리보다 강도가 훨씬 높습니다. 우리는 아직 마일드한 편이죠. "

- DJ는 지팡이로, JP는 앞니로 특징을 잡아 항의도 있었다죠.

"신문만화 때문에 DJ가 지팡이를 안짚고 다니게 됐죠. 김옥두의원이 내 방에 와서 화를 내고 그랬어요. 그래서 시가가 처칠을 상징하듯 지팡이는 민주화의 상징인데 왜 그러냐 했더니 늙어 보인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한계죠. 상징을 만들어주면 좋은 건데 이를 인정을 안하니. JP 앞니나 정주영씨 얼굴에 검은 점도 마찬가지죠. 만화는 원래 과장을 통해 당사자를 금방 인식시켜야 하는 건데 공인들이 조금 양보하고 아량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 - 유행어를 적절하게 구사하는 생생한 대화가 왈순아지매의 또다른 매력으로 보입니다.

"세태를 적절하게 포착하는 것이 시사만화 승패의 관건중 하나입니다.

항상 신경을 24시간 가동시키는 편입니다.

꿈에도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어 자다가 일어나 메모하기도 합니다.

식당을 가도 옆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귀담아 듣습니다. "

- 필화사건도 많으시죠.

"3공시절에는 남산 (중앙정보부)에 가서 라면을 먹을 때 (식사로 라면을 주었기 때문에 나온 말) 도 많았지요. 그땐 참 대단했어요. 청와대.문공부.시경.보안사등 다섯군데서 한꺼번에 폭언에 가까운 항의전화를 받다보면 먹은 게 체해 소화불량이 걸린 적도 많았습니다.

문민정부 초기만 해도 김현철씨를 거론조차 못했습니다. 6천회 무렵으로 생각되는데 YS를 짚차로 표현하고 그 뒤에 로얄프린스를 그려 "저 차도 보통 기운이 센게 아니다" 라고 그렸다가 청와대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어요.

- 7천회가 넘었죠.

"94년 6천회 돌파 때 당시 이필곤 사장이 발렌타인 30년을 주며 무슨 뜻인 줄 아느냐고 해요. 좋은 술 아니냐고 했더니 '30년 채워 달라는 소리다' 라고 하더군요. 지금 중앙일보에서 23년째인데 이제 좀 힘들어요. 사실 처음부터 번호를 매겼더라면 1만5천회정도 될 거에요. 대한일보 (5년)→경향신문 (7년)→중앙일보로 옮길 때마다 일련번호를 새롭게 시작했거든요. 횟수가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그 내용이 어땠고 거기에 얼마나 흡족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처럼요. " - 정치말고도 재미있는 일화가 많아겠습니다.

"맥주 3사가 한창 싸울 때에요. YS가 '화이트' 를 경상도식으로 '하이트' 로 잘못 발음한 모습을 그렸는데 얼결에 홍보가 된 맥주회사가 맥주를 한트럭 (6백병) 보냈더군요. 편집국에 돌렸습니다.

- 대회장을 맡은 아시아만화대회는 작가들간의 직접 교류라는 점에서 의의가 특별할 듯합니다.

"만화는 만국어입니다. 국제경쟁력이 대단한 상품이지요. 그러나 아시아만화는 일본을 빼고는 국제시장에서 제 대접을 못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아시아만화가들이 머리를 맞대어 이걸 한번 고쳐 보자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원화전시회를 열어 아시아만화의 우수성을 우선 아시아사람들이 제대로 알게 하자는 목적도 있습니다.

마침 정부에서도 만화의 전당을 만들고 TV만화방영에 국산 쿼터제를 실시한다고 하는데 반가운 일입니다. " - 희한한 사건이 생기면 '이건 만화같다' , '완전히 망가다' 이렇게들 많이 말하는데 만화가로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섭섭하죠. 만화는 일본발음으로 망가인데 만화에 대한 인식이 아직 안좋은게 사실입니다. 시사만화를 포함해 아직 만화에 대한 보수적 인식들이 남아 있죠. 만화는 영국서 발생, 미국서 꽃피우고, 일본에서 상업화에 성공했습니다.

우리 만화의 윤리적 문제는 일본에 비하면 아직 가벼운 수준입니다. 물론 극화.성인만화에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우리 정서라는게 있으니까 너무 벗기지 말고 그런 면에서 일본과 달라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 대를 잇게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요.

"딸이 미대출신이에요. 유학갈때 약속했어요. 왈순아지매 전수받겠다고. 5년뒤 오더니 못하겠다고 그래요. 평소 아버지 사는 것을 보니 이건 사는게 아니다. 재미도 없지, 잠도 못자지, 집안 분위기도 우울해지지. 한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다른 신문사에서 잠깐 도안일을 하더니 지금은 일반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

- 아쉬움도 있겠지요.

"남의 약점, 그른 점만 한평생 그려온 점이 어떻게 보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만난 사람=이헌익 대중문화팀장

정리 = 정형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