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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전액 우선변제 안되면 근로자 생존권 보호 '발등의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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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헌법재판소의 퇴직금 우선변제 규정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올 연말까지 퇴직금제도의 개선이 이뤄짐에 따라 우리 실정에 맞는 퇴직금제도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단 헌재 결정으로 전액 변제해주던 퇴직금의 범위가 연내에 축소될것으로 전망되며 이를 계기로 퇴직금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 문제의 발단 = 헌재의 결정은 퇴직금을 저당권에 우선하여 '무제한' 지급하는 것이 채권확보의 중추수단인 담보물권 (物權) 제도를 뿌리채 흔들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헌재는 퇴직금의 후불임금 내지 사회보장급여적 성격에 비추어 국회가 올 연말까지 '적정범위' 를 정하고 필요한 법규를 보완 또는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했다.

관련기관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은 퇴직금을 적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퇴직금을 전액 적립하는 기업이 43%, 50%이상을 적립하는 기업이 8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돼 퇴직금제도의 개선이 각 기업에 미치는 파장은 클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퇴직금을 전액 사외에 적립하고있는 기업은 8%에 지나지 않고 일단 사내에 유보되더라도 돈이 급하기 때문에 대개 운전자금으로 활용되는 실정이다.

혹 금융기관에 예탁하더라도 이를 담보로 대출받는 경우가 허다해 장부상으로는 적립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속출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헌재결정과 관련, 당장 급한 것은 기업파산시 다른 채권에 비해 얼마만큼의 액수를 우선적으로 변제해야 하느냐는 문제이며 퇴직금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중의 하나로 중간정산과 기업연금의 활용도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3일 노사관계개혁위원회 (노개위)가 개최한 '퇴직금 지급제도 개선방안' 공청회에서도 토론자들사이에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9일 열린 노개위에서 공익위원들이 마련한 '공익안' 에서는 이를 절충했는데 퇴직금제도 개선과 관련된 주요쟁점들은 다음과 같다.

◇ 최우선변제 = 노동계는 8년5개월을, 경영계는 3년을 주장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공익안은 헌재판결 이전에 입사한 근로자에 대해선 89년3월~97년8월 발생분과 97년8월 이후 3년이내 발생분의 합으로 하되 상한을 8년5개월로 하고 97년8월 이후 입사자는 최종 3년으로 제안했다.

◇ 중간정산 = 근로자는 필요할 때 목돈을 이용할 수 있고 사용자는 경영실적이 좋을 때 중간정산을 함으로써 장래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때문에 양측 모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근로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중간정산을 의무화하자고 주장하나 경영계는 이에 반대한다.

올들어 잇달아 발생한 대기업부도로 불안해진 근로자들이 한꺼번에 중간정산을 요구할 경우,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을 곤경에 빠뜨리고 최악의 경우 도산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 기업연금 = 기업의 연금가입을 촉진할 세제상의 유인책과 현행 근로기준법상 연금 취급기관인 보험사들의 상품개발이 제도도입에 앞선우선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공청회 공익대표로 나온 한양대 오창수 교수는 "이번 기회에 사외적립하는 기업연금제도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후보장이 정부의 '국민연금' 일반 사기업의 '기업연금' 및 개인차원의 '개인연금' 으로 체계화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기업연금을 '퇴직연금보험' 으로 국한시킨 것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연금의 원래 취지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간 겸업 추세와도 어긋난다는 것이 은행과 투신업계의 주장이다.

이들 기관이 연금설계 경험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금자산의 성공적 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선진국의 최근 경향을 감안한다면 은행 및 투신까지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 임금지급보장 = 노동계는 임금 (퇴직금 포함) 체불시 보장기금에서 변제함으로써 근로자의 생활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경영계는 퇴직금제도의 임의화 또는 폐지를 전제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공익안은 지급보장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용자 부담 (정부 재정지원) 의 기금조성이 바람직하나 경제여건을 보아가며 검토할 문제라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 미국의 예 = 미국에는 법정퇴직금은 없지만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퇴직연금을 설정해 놓고 있다.

대개 근속연수와 최종임금을 기준으로 "퇴직시 얼마를 지급하겠다" 고 약속한다.

우리의 퇴직금과 차이는 일정기간을 근무하지 않으면 연금으로 적립된 돈을 받을 수 없다는것이다.

최근에는 급부 액수를 정하는 대신 사용자가 매월 부담하는갹출금을 정하는 형태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 경우 근로자가 받을 퇴직금은 운용실적에 따라 달라진다.

기업의 갹출금은 물론 개인의 갹출금도 소득공제가 되고 투자로 얻어지는 배당이나 이자도 세금이 유보된다.

◇ 앞으로의 전망 = 19일 열린 회의에서도 단일안 도출에 실패한 노개위는 이달 말까지 노동계안.경영계안.공익안을 정부에 복수 권고키로 했다.

정부는 이들 3개안을 토대로 정부안을 만들어 10월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며 공익안이 정부안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노사간의 주장이 워낙 다른 데다 노동계는 대선까지 끌고 가겠다는 태도이고 경영계는 관련조항이 연말까지 개정되지 않을 경우 자동폐기될 것이므로 답답할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따라서 대선을 앞둔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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