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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외국은 한국 경험서 한 수 배우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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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를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左이 6일 오후 자카르타의 대통령궁에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자카르타=오종택 기자]

3일 오클랜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뉴질랜드 정상회담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했다.

존 키 뉴질랜드 총리는 마치 대담프로의 사회자처럼 이 대통령에게 각종 질문 공세를 폈다. “한국 경제가 실물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느냐. 전망은 어떠냐” “한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뭔가” “중국과 미국의 경제회복 전망은 어떻게 보느냐” 키 총리의 질문에 이 대통령은 숨 돌릴 틈이 없을 정도였다고 우리 측 참석자들은 전했다.

5일 캔버라의 의회총리실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회담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단독회담이 진행된 한 시간 내내 금융부실자산처리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이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케빈 러드 총리는 1997년 IMF위기 당시 한국의 경험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러드 총리는 두 시간의 공식만찬 이후 다시 이 대통령에게 “술이나 한잔 하시자”며 총리공관으로 초청했다. 오후 11시40분까지 두 시간 동안 이어진 맥주 회동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의 97년 위기 극복 경험과 함께 최근 우리 정부의 재정 조기 집행, 잡셰어링 등 경제 살리기 정책 등을 설명했다.

정상회담에선 좀처럼 전례를 찾기 힘든 이례적 풍경들이었다. 이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질문 공세엔 성공적 사례로 평가 받는 한국의 과거 경제위기 극복 노하우와 최근 우리의 정책 방향을 참고하려는 외국 지도자들의 열의가 담겨 있었다.

5일 총리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한 호주 국민당의 비숍 당수 대리는 “한국민의 저력과 한국 정부의 조치들을 볼 때 한국이 이번 위기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10억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펀드를 우리은행과 공동조성키로 결정한 호주 맥쿼리 그룹의 니컬러스 무어 회장은 “투자은행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경제의 전망은 매우 밝다. 한국은 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해 향후 글로벌 리더가 될 것”이라고 덕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국내 정치 상황은 이러한 경제 한류(韓流)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법안 처리가 당리당략에 따라 연이어 무산되는 현실은 외국 정상들의 자문 요청에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외국 지도자들의 관심과 평가가 그저 덕담이나 립서비스 차원으로 머무느냐, 아니면 정말 세계에서 경제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하는 요인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주체는 외국 지도자들이 아닌 바로 대한민국 지도자들의 몫일 것이다.

캔버라에서 서승욱 정치부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