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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책에 길을 묻다] 박완서와 유종호 <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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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9면

평론가 유종호(74· 전 연세대 교수) 선생 같은 분이 있다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위안이다. 그의 균형감각과 지적 교양주의는 그만큼 소중하다. 1970년대 이후 상황을 염두에 둬보자. 목청 큰 사람이 최고인 ‘쉰 목소리 문학’의 틈에서 당신은 시종여일했는데, 그 자세가 정갈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회상에세이 『나의 해방 전후』 『그 겨울 그리고 가을』 두 권도 마찬가지다. 개인적 기록이지만, 은근한 사회적 파장도 품고 있다. 목소리 큰 역사책 앞에서 “그게 전부일까?”를 따져 묻는다. 목소리 큰 역사책이란 80년대 수정주의 이후 힘을 얻어온 민중사관의 역사를 통칭한다. 자기 관점에 따라 역사를 재단하고, 공식화된 기억만을 심어온 게 그들이다. 일제와 친일파라면 부르르 떨며 단죄를 하고 사회분열까지 부추긴다.

유종호의 어릴 적 기억은 그런 공식 역사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인 일인 여교사 오기하라 마사에가 그렇다. 그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깍듯하게 말을 높였고, 꼬마손님들을 불러 설탕을 듬뿍 친 빵을 만들어줬다. 그날 함박눈이 내렸다. “검정 외투 차림으로 함박눈 속에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은 내 유년기 활동사진의 최고 서정시다. 이 서정시 때문에 나는 많은 것을 불문에 부칠 수 있었다.”라고 그는 회고한다.

눈길 끄는 게 창씨개명 일화. 자기의 일본명은 야마모토 마사오였는데, 창씨개명을 거부한 학생은 시골학교에 한 명도 없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훗날 2000년대 초입 한 학생이 강의 때 캐물었다. “선생님, 왜 저항시인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했죠?”라고…. 저항시인이 그랬을 리 없다는 ‘민족주의 공식’은 누가 심어줬을까? 저항시인이란 규정도 자의적이지 않을까?

박완서의 『싱아』에도 창씨개명 얘기가 나온다. 그는 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고집일 뿐 자기는 “하루에· 하나코 같은 이름이 좋았다”는 귀여운 고백도 나온다. 해서 유종호·박완서의 기록은 ‘날 것으로서의 경험’이다. 균형 잡힌 역사학자 윤해동이 『식민지의 회색지대』에서 말한 대로 정형화된 기억을 심는 공식 역사책과 달리 ‘날것 경험’은 비록 작은 경험이지만, 독선과 이념의 경직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 동안 우리는 풍속·일상의 섬세한 결을 무시해왔는데, 성장소설·회상록은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아 준다. 세상은 쉰 목소리의 역사학자 뜻대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일까? 얼마 전 서울대 국사학과를 정년퇴임한 이태진 교수가 숱한 민중사관 역사서들의 폐해를 우려했던 목소리도 함께 떠오른다.

두 책은 그게 전부는 아니다. 40년대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책에는 소소한 발견도 많은데, 은근히 재미있다. 어린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해방 직후라는 것, ‘사바사바’란 속어의 등장은 6·25부터다. 또 양색시들 꽃값으로 미군들은 양담배 한 보루를 지불했다 등등…. 그건 그렇고 유종호 최고의 책은 『시란 무엇인가』(95년)『문학이란 무엇인가』(89년)이다. 봄이다. 진정 균형 잡힌 교양과 좋은 문장을 만나고 싶으시다면 그걸 권해드린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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