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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베이커著 '정자전쟁' 성행위 진화생물학 시각서 조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최근 번역된 영국 맨체스터대 로빈 베이커 교수 (동물학) 의 '정자전쟁' 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질문에서 시작한다 (까치刊) .

"우리는 왜 행복한 부부생활 속에서도 가끔씩 외도충동을 느끼는가. 아이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왜 주기적 성관계를 맺는가. 여자들의 오르가슴은 왜 그렇게 예측하기 어려운가…. "

저자의 결론부터 인용하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다시 말해 종족보전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이같은 행동은 두뇌의 의식과 상관없이 수백만년동안 거듭된 신체의 진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인간의 성욕은 변치 않는 본능적 충동이라는 상식을 깨고 오직 진화라는 엄격한 틀로 성과 번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발표될 당시 많은 논란을 불렀던 화제작으로 저자 스스로 "새로운 해석을 처음으로 광범한 독자에 던진다" 고 선언하고 있다.

저자는 이같은 입증하기 위해 인간의 성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이야기 한가운데에 '정자전쟁' 이란 낯선 개념이 등장한다.

'정자전쟁' 은 각기 다른 남성에서 나온 정자들의 대결. 전장 (戰場) 은 물론 여성의 몸이다.

정자의 주목적이 난자와의 '만남' 을 통해 새 생명을 준비하는 것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른 남자의 정자를 물리치는데 있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친다.

특히 정자 구성을 살펴보면 이런 목적이 확연히 드러난다고. 정자 가운데 난자와 수정하는 '난자잡이' 의 비율은 1% 미만. 나머지는 다른 남자의 정자를 때려잡거나 (정자잡이) 길을 가로막는 (방패막이) 일 외에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불임성의 '자살특공대' 다.

부부간의 주기적인 성관계도 이런 시각에서 설명된다.

많아야 10명이 안되는 자식을 보는 남성이 일생에 2천~3천번의 관계를 맺는 이유는 '싱싱한' 정자를 아내 몸에 남겨 다른 정자의 접근을 막기 위한 '전략' .나이에 따라 물론 주기는 다르지만 될수록 새로운 정자를 잔류시켜 다른 정자의 침입을 막도록 '설계' 됐다고 한다.

정자의 수명은 길어야 5일을 넘지 못한다.

문제는 남성는 더 많은 '씨앗' 을 남기려, 여성은 더 훌륭한 '유전자' 를 찾으려는데서 생긴다.

부정이 발각될 위험을 감수하고 남녀가 외도를 하는 것도 심리적 원인보다 자신의 '닮은꼴' 을 많이 남기기 위한 행위로 해석한다.

저자는 실제로 혈액형 조사 결과 전세계 어린이의 10%가 친아버지가 아닌 남자에게서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외도를 정당화 혹은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 는 지적을 의식한듯 "나의 목표는 인간의 행위를 편견이나 비난없이 해석하려는 것" 이라고 못박고 있다.

그는 나아가 몽정.자위.피임.집단성교.오르가슴.동성애.매춘등 여러 성현상을 '종족보존' 과 '정자전쟁' 이란 잣대로 계속 풀어나간다.

예컨대 남성의 몽정과 자위는 '새롭고 강력한' 정자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일 수 있으며, 여성은 종족보존의 성공을 높일 시기라고 판단되면 언제나 오르가슴을 원한다는 등 평소 우리의 상식적 판단을 하나하나 허물어뜨린다.

반면 양성애와 매춘은 많은 파트너를 만나 종족번식에 유리하지만 질병감염의 위험이 높아 사회 전체로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정자전쟁이 없었더라면 사람들의 성생활은 무척 단조로웠을 것이며, 남성의 생식기도 소량의 정자만을 생산하도록 작게 진화됐을 것이라고 짚고 있다.

특히 유전자 감별등 최근에 발전된 친부 (親父) 확인검사로 부부들의 외도 또한 줄어들 수 있다는 진단도 흥미를 모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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