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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여인, 어·머·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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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김종해(右).종철 형제 시인은 "유정한 느낌을 주는 어머니 시들을 묶었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얼마 남아 있지 않다//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가장 아름다운 여인은/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어.머.니"(김종해 '사모곡' 전문)

"그날/젊은이들은 모두 떠났다/조국으로부터 어머니로부터 운명으로부터/모두 떠났다/젊은이들이 믿음과 낯선 죽음과/부산 삼부두를 실은 업셔호의 전함(戰艦)/수천의 빗방울이 바라를 가라앉히고/어머니는 나를 찾아 헤매었다"(김종철 '죽음의 둔주곡 三曲-베트남 참전하던 날' 부분)

헐벗고 굶주렸던 1950~60년대, 이 땅의 어머니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은 특히 극심했다. 집안 살림살이는 물론 생계를 위해 생업 현장에 나서기 일쑤였다. 형제 시인 김종해(64).김종철(58)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시인의 뇌리에는 공사 현장에서 파상풍을 얻어 몸져 누운 아버지와 줄줄이 사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부산 충무동 시장에서 떡장사.술장사.국수장사를 마다 않으시던 어머니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막걸리 밀주를 빚다가 단속반원에 걸리자 실랑이 끝에 구들장 밑에 숨겨둔 술독을 곡괭이로 깨뜨리고는 펑펑 울기도 했다.

두 시인은 "지금 돌이켜 보면 가난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스스로 갈 길을 개척하는 힘을 기르지 못했을 거라는 얘기다. 물론 가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두 시인에게 자식에 관한 한 어떤 일도 마다않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자 시편 속에 펄펄 살아있는 절대자 같은 존재다.

두 시인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5년만에 어머니를 추모하는 시편들을 모은 합동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문학수첩)를 펴냈다. 수 십년 동안 써온 '어머니 시' 중 20편씩 추렸다. 마침 어버이날이 코 앞이다. 시 구절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서려 있다.

등단 40년 이쪽 저쪽인 두 중견 시인은 각각 문학출판사를 운영하며 시전문 계간지 '시인세계'(김종해), 계간 문예지 '문학수첩'(김종철)을 펴내는 비슷한 삶의 경로를 밟아 왔다.

같은 체험을 서로 다른 시어로 녹여내는 변주가 흥미롭다. 형 김종해씨의 시어가 동글동글 정갈하다면 동생 김종철씨의 시편들은 우직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시들이 많다. 김종해씨는 "김종철 시인의 시는 어머니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사회성.시대성이 반영돼 있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준다"고 평가하자 김종철씨는 "김종해 시인의 시는 가족사의 애환을 꾸밈없고 순수하게 표현해 고통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gn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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