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메랄드 궁전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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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여섯시 십분전, 나는 오피스텔 일층의 커피숍으로 내려갔다.

습도와 밀도가 동시에 느껴지는 눅눅한 세상, 커피숍의 넓직한 공간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대형 창유리 옆쪽으로만 띄엄띄엄 몇명의 손님이 앉아 있었는데, 낯설고 먼 이방으로 떠나려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한결같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커피숍이 아니라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풍경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옆 모습이 눈에 익은 한 남자, 담배를 태우며 안개비 내리는 창밖을 망연히 내다보고 있는 오기욱의 모습이 불현듯 시선 끝에 닿았다.

"어때, 술 마시기 좋은 날이지?"

옆으로 다가가서 나는 선 채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놀란 듯 고개를 돌리고 그가 다소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술이 아니라 식곤증을 다스리는 중이에요. 좀전에 식사하고 올라왔거든요. 근데 여긴 어쩐 일이에요?"

"누굴 좀 만나러 왔는데… 아직 안 왔군. "

아직 이예린이 오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누구…여자예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그가 비로소 말똥한 눈빛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방송국 피디야. 며칠 전부터 해골 복잡하게 만드는 프로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하고 있는데… 오늘 만나서 확실하게 카운터 펀치를 먹일 참이야. "

"여자에게 카운터 펀치 먹일 일도 생기고… 이래저래 형은 심심하지 않아서 좋겠수. "

"그래, 요즘은 어떨게 지내냐?"

주문을 받으러 온 아가씨에게 좀 있다가 한 사람이 더 올 거라는 말을 건네고 나서 나는 물었다.

"사하라 사막을 맨발로 걷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

"사하라?"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사막 같은 나날을 산다, 그런 거죠 뭐. 혹시 배낭 여행 떠날 생각 없어요?"

"어디, 사하라 사막으로?"

"아뇨, 기간도 정하지 않고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돌아다니는 배낭 여행요. 우리 같은 사람들, 돌아다니다 죽는다고 해도 별로 억울할 건 없잖아요?"

지금처럼 사는 것보다 못할 게 뭐가 있느냐, 하는 표정으로 그는 말을 하고 나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행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 그는 진저리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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