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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책 vs 책] 善이란 무었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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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원제 Ethik
B. 스피노자 지음, 강영계 옮김, 서광사, 332페이지, 1만원.

미덕에 관한 철학적 에세이, 원제 Petit traite des grandes vertus
앙드레 콩트- 스퐁빌 지음, 조한경 옮김, 까치, 381페이지, 1만원.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고 했다. 사십대 중반의 직장인 예닐곱 명이 금요일 저녁마다 모여 철학 책을 강독하는데 벌써 8년째 이어져오는 모임이라고 했다. 구경 삼아 그 모임에 갔던 날은 질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를 강독중이었다. 그들은 ‘실존할 수 있음, 그것은 역능이다’는 명제에서 역능이라는 단어를 놓고 30분 이상 토론했다. 그날 그 자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그들 중 한 사람이 가지고 온 스피노자의 『에티카』였다. 페이지마다 무수히 밑줄이 쳐져 있고, 여백에는 내밀한 메모가 적혀 있고, 오래 손을 탄 듯 하늘하늘 낡아 보였다. 대체 17세기 철학자의 어떤 매력이 21세기에도 여전히 그것을 읽고 또 읽게 만드는가. 서점 가는 길에 그 책을 집어들었다.

『에티카』가 시대를 초월하여 읽히는 이유는 그 책이 중세 철학과 독일 관념론 철학을 연결시켜준다는 철학사적 의미, 현대 철학의 쟁점이 되는 존재론·인식론의 핵심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만은 아니었다. 스피노자 이후로도 무수히 많은 인문학자들이 신과 인간의 문제, 인간 정신과 정서에 대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그럼에도 『에티카』가 고전으로 거듭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일관되게 ‘선’(善)을 지향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었다. 니체나 쇼펜하우어는 생의 어느 시기에 한두 번 읽을 뿐 되풀이해서 읽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에티카』는 신, 곧 ‘영원하고 무한한 유(有)’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무한한 많은 것들, 물체와 인간 정신, 그리고 정서에 대해 정의하고 설명한다. 특히 인간의 정서 48가지를 정의해 둔 장과, 정서가 어떤 선 혹은 악을 가지는지 증명하고자 한 마지막 장이 재미있다. 그는 정서의 통제와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예속이라 정의한 후 “정서에 복종하는 인간은 자신의 권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따르도록 강제당하는 운명의 힘 안에 있다”고 한다. 정서를 가공 판매하는 예술가들이 듣기에는 좀 야속한 정의다 싶다.

참고로,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알아보기 위해 건강한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한 미국의 성장심리학자인데 스피노자는 링컨·아인슈타인과 함께 그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건강한 성격 모형에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인간의 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덕에 관한 철학적 에세이』는 한 수 더 뜬다. “미덕, 이것은 힘이며, 탁월함이며, 인간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이다”라고 선언한 뒤 신중·절제·연민·겸손·관용·순수·정직 등 18가지 미덕을 플라톤에서 스탕달까지 서양 인문학의 사유와 통찰을 총망라해 집대성해 놓았다. 저자는 파리 1대학 철학 교수라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지배자, 자기 행위의 심판관이 되도록 도와주고자 한다고 한다. 그 말은 ‘정서에 복종당하지 않는다’는 스피노자의 정의와도 맥이 닿으며, 역시 『에티카』가 가장 자주 인용된다.

‘자비’항목을 보면 ‘자비란 우리들이 불쌍히 여기는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욕망이다’라는 스피노자의 정의를 인용한 후, ‘만약 스피노자가 집단 학살의 시대에 살았다 해도 인간의 삶은 이해하는 데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장켈레비치의 『용서』라는 책을 인용한다. 결국 저자가 찾아낸 자비의 정의는 ‘아직 용서의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아직 기쁨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사랑이다. 자비는 촉매제, 즉 중간 과정의 미덕이다’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정의와는 또 다르지만,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에 두 책 모두 가까이 두고 자주 꺼내 보면 새록새록 인간을 알아가는 맛이 각별하다.

공부 모임을 끝내고 나오면서 동행인에게 물었다. 이 공부가 당신의 생에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고. 그는 철학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했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내면에 있던 부정적인 면들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모두 자신의 것임을 인정하고 수용했고,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다. 사실 좀 놀랐다. 그것은 마음 공부를 하는 수행자들과 정신분석 치료자들이 도달하는 지점과 비슷한 곳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해도 신이 하나이듯이, 서로 다른 길로 걸어가도 인간 정신이 도달하는 지점은 한 곳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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