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실 좋아야 행복한 노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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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머리가 하얗게 센 부부가 손을 잡고 한가로이 산책을 하며 행복을 즐기는 식의 노년 생활을 하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현재는 물론 노년을 준비하는 중년들에게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의 노년에는 문화가 없다' 는 말을 한다.

한술 더 떠 우리의 노부부란 '소 닭보듯 하는 사이' 로 말해지기까지 한다.

최근 들어 노년 이혼율이 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사회현상의 반증이다.

몇년전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김모 (69) 씨는 현재 평생을 함께해온 조강지처로부터 버림받을 처지에 놓여 있다.

막내 딸을 출가시킨 지난 3월, 아내가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 며 전격적으로 이혼을 요구해왔기 때문. 아내는 권위적인 김씨의 성격과 바람끼를 이혼사유로 내세웠다.

집에서 대화 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고, 어떤 일이든 말을 꺼내면 '당신이 뭘 안다고' 라며 무시당해 왔다는 것. 게다가 젊은 시절 바람끼가 요즘에는 김씨가 소일거리 삼아 나가는 노인들 모임에서까지 그치질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들로 이미 10여년 전부터 아예 각방까지 써온 처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86년에는 결혼 20년이상된 부부의 이혼율이 전체이혼율중 4.5%를 차지했으나 95년에는 9.1%로 2배가량 늘어났다.

일본의 경우도 최근들어 노년이혼이 급증하고 있어 신조어인 '나리타의 이별' 이란 말까지 등장할 정도. 막내의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보낸 후 나리타공항에서 갈라선다 해서 생긴 말이다.

표면화되는 노년부부의 갈등에 대해 한국노인의 전화 서혜경 (徐惠京) 이사는 "먹고 사는데 급급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낸 현재의 노년세대들은 가정에서 즐거움을 찾거나, 부부간의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익숙하지 않아 정년퇴직 후 막상 가정에 돌아와 서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 으로 분석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 남은 노년을 좀 더 행복하게 보내기 위한 첫단계로 부부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행복한 노년' 은 뭐니뭐니해도 부부관계가 핵심이다.

남녀의 구분이 명확했던 것이 중년시절이라면 노년에는 그런 구분이 희미해진다.

남자가 일터로 나가고 들어오는 일이 없어짐으로 인해 같이 지내는 동료의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친구처럼 동등한 입장에서 상대에게 정서적인 지지를 보낼 수 있어야 동반자로써 신뢰가 구축된다.

둘째로 부부는 당연한 관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를 더욱 배려해야 한다.

노년의 부부관계는 공통적인 관심사나 취미가 없을 경우 서로에게 무관심해지 쉬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최혜경 (崔惠卿.가정관리학과) 교수는 "부모의 행복한 노년의 위해서 자녀들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다든가, 부모가 둘만의 여행을 꺼릴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같이 나서는 등의 노력을 해야할 것" 라고 일러준다.

노인문제전문가들은 우리의 노년들이 자식에 얽매인 삶을 사는 것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노부부라도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어서 해외여행 한번 가기를 꺼리는 것이 현실. 게다가 행복의 잣대를 '자식이 자신에게 얼마나 잘 하는지 아니면 자식이 얼마나 잘 되는지' 에 두고 있어 진정한 자신만의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자식의 굴레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홀로 된 노인을 위해서는 재혼과 이성교제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지난달 대전노인의 전화가 60세이상 노인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0%가 재혼을 원하고 있고 97%는 이성교제를 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때문에 최근에는 재산문제로 인한 자식들과의 마찰을 고려해 노인들은 정식결혼보다는 동거를 택하거나 재산의 일정액을 배우자에게 준다는 것을 미리 못박는 일종의 계약결혼을 하기도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같은 '계약결혼' 이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대안의 하나로 제시하기도 한다.

3세대가 함께 사는 일은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

노인 부부만 살거나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인으로 지내야 하는 시간도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노년의 삶' 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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