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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딛고 ‘라오스의 정주영’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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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브스코리아 재외동포가 운영하는 한상(韓商)기업 중 처음으로 한국 증시 상장을 두드리는 곳이 있다. 라오스 대학생 입사 선호도 1위 ‘라오스 국민기업’ 코라오가 그 주인공이다. 해외에서 기업 활동 10년 만에 라오스 최대·1등 기업을 일군 위풍당당 코리안 오세영(48) 코라오 회장의 성공 스토리를 현지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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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라오스’ 하면 공산국가 내지 여행하기에는 너무 멀고 더운 나라로 인식한다. 비행 시간으론 6시간 남짓한 거리지만 직항로가 없어 인근 태국 방콕이나 베트남 하노이,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하룻밤 묵거나 그곳 공항에서 몇 시간씩 기다렸다 갈아타야 한다.

라오스의 큰 별, 오세영 성공 스토리

그렇게 조금은 힘들게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하면 우선 시내를 달리는 낯익은 자동차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현대차 스타렉스와 포터 트럭, 기아차 모닝(수출 차 이름은 Picantos), 현대 쏘나타다. 서울처럼 쌩쌩 달리지도 않고 잔잔한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 앞뒤로 HYUNDAI나 KIA보다 더 큰 로고 ‘KOLAO’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회사일까? 이곳이 바로 라오스를 대표하는 기업이자 한국인을 대표하는 기업 코라오다. 회사명은 코리아(Korea)와 라오스(Laos)의 머리글자를 땄다. 비엔티안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의 절반이 코라오가 판매한 것들이다. 오토바이도 3분의 1이 코라오 브랜드다. 1997년 자동차와 오토바이 판매로 시작한 코라오는 이제 목재, 건설, 금융, 유통, 물류, 시멘트 제조, 부동산 개발 및 임대, 골프장과 리조트 사업 등 12개 회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했다.

사업 시작 10여 년 만에 직원 7450명이 연간 1억2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린다.“‘라오스 없는 코라오’, ‘라오스 없는 오세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어요. 라오스는 제 존재 이유입니다.”우리 돈으로 따지면 연간 매출이 2000억 원이 채 안 되는 중견기업이지만, 국내총생산(GDP)이 42억 달러(2007년)로 산업 기반이 약한 라오스에선 경제를 이끄는 선두 기업이다. 아무리 라오스 시장이 작다고 해도 거의 맨손으로 들어가 10년 만에 라오스 최대 민간 기업을 일궈 ‘라오스의 정주영’으로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뚝심과 현지화로 이룬 성공신화

그도 처음에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성균관대를 나와 코오롱상사에 들어갔다. 회사에서 주는 다이어리 첫 장에 이렇게 적었다. “무역부서에서 3년, 내수부서에서 3년 일을 배운 뒤 회사를 그만둔다”고.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원하는 데로 보내달라고 사정했다. 희망대로 수출 업무를 맡았다.

유럽에 이어 베트남을 담당했는데, 여기서 인생이 확 바뀌었다. 90년대 초 베트남은 이제 막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한 시기였다. 종합상사맨 오세영에게는 도전과 기회의 땅이었다.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베트남행 비행기에 올랐다. 91년 12월 현지인과 합작해 재킷을 만드는 봉제 공장을 차렸다.

물건을 만드는 족족 팔려나갔다. 노다지를 캐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동업자가 변심하는 바람에 1년 만에 공장문을 닫았다. 당시로선 큰돈인 25만 달러의 빚만 떠안은 채. 그래도 용기를 내 뛰어든 사업이 중고 자동차와 오토바이 판매업. 이 사업도 초반에는 잘나갔다. 당시 베트남 경제가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으며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93년 미국이 베트남과 수교하면서 금수 조치를 풀자 많은 나라의 대기업이 몰려와 중고가 아닌 신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95년 베트남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가입하면서 5년 이상 중고품 수입중단 조치를 취했다. 그래도 시장은 여전히 값싼 중고차를 원했다.

베트남 사정에 밝다고 자부하던 오 회장은 베트남 정부의 중고차 수입금지 조치가 유지될 수 없다고 보고 계속 한국산 중고차를 들여왔다. 그러나 베트남 정부의 조치는 빈말이 아니었다. 두 번째 실패였다.“건방을 떨다가 고꾸라진 겁니다. 눈앞 벌이가 좋으니까 자만에 빠져 제도가 바뀐 것을 무시했어요. 이 두 번의 실패가 오늘의 저를 키웠습니다.”

베트남에서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안고 오 회장은 바로 옆 라오스로 눈을 돌렸다. 97년 초 라오스 국경을 넘으면서 그는 다짐했다. 천천히 가더라도 가진 것만으로 사업을 시작하자(은행 부채를 쓰지 말자), 동업하지 말자, 라오스를 마지막 나라로 뼈를 묻자 등 세 가지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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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부터 탐색했다. 당시 라오스 자동차 시장은 일본 차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가격이 2만 달러 이상으로 비쌌다. 남다른 사업 감각을 지닌 오 회장이 꺼내든 카드는 일본 차보다 싼 중가(中價)와 사후관리 서비스(AS) 강화 전략. 한국산 중고차를 수입해 팔면 일본 차 가격의 절반 내지 3분의 1로 댈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가격 경쟁력만으로 일본 차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여기서 다시 오 회장 특유의 판단력과 저돌성이 발휘된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일본 차가 라오스에 수입돼 왼쪽으로 옮겨 사용되는 것을 본 그는 무릎을 친다. 당장 “운전석을 뜯어 옮겨야 하는 일본 차는 고속으로 달리면 위험하다”고 노골적인 광고전을 폈다.

원래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한국 차가 비록 중고라도 더 안전하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은 것이다. 오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년 뒤 라오스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했던 국내 기업이 외환위기에 몰려 철수하자 이를 인수해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직접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중고 자동차와 부품을 가져와 현지 공장에서 조립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승용차는 물론 중·대형 버스와 트럭의 반제품 현지 조립생산이 가능하다.

중간 가격대와 AS 강화로 승부

‘라오스판 시발 자동차’ 코라오의 시장점유율은 약 53%. 코라오는 현대·기아차 공식 독점 대리점으로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 타이어를 판매하고 전국에 40~50개의 AS망을 갖췄다. 코라오 브랜드 ‘중고 새 차’와 현대·기아차 신차를 합쳐 하루 평균 500여 대씩 팔린다. 라오스 진출 7년 만인 2004년 판매대수로 도요타, 혼다 등 굴지의 일본 브랜드를 밀어냈다.

특히 화물차는 10대 중 9대가 ‘메이드 바이 코라오(Made by KOLAO)’다. 한국산 중고차 도입을 계기로 오 회장은 라오스의 견고한 화교 경제권을 뚫었다. 자동차산업이야 중국이 한국보다 크게 뒤처져 있어 화교들도 한국산 중고차의 라오스 상륙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세를 몰아 오토바이 제조에 뛰어들었다.

코라오 오토바이도 35%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이러니 라오스에서 오 회장은 자연스럽게 ‘자동차 왕’으로 불린다. “일본 혼다의 고가 모델과 중국산 저가 모델 사이에서 중가 시장을 개척한 게 통했어요. 현지 업계 최초로 AS를 해주는 점도 어필했고요.” 라오스에서의 사업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코라오가 급성장하자 주변에서 질시하기 시작했다.

라오스 정부도 코라오의 성장을 견제했다. 2000년부터 2년여 동안 30여 차례에 걸쳐 세무조사를 받았다. 그렇게 털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이게 오히려 라오스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2003·2004년 연속 최우수 기업에 뽑혔다. 오 회장은 라오스인 이상으로 라오스를 사랑한다. 베트남에서의 실패 이후 라오스에 둥지를 틀면서 늘 가슴에 새긴 원칙이 ‘현지화’다. 현지화에 왕도는 없다.

무엇보다 현지인들이 외국 기업으로 따돌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업 확장 못지않게 사회봉사 활동에 신경써야 한다. 사업하는 국가에서 거둔 이익은 재투자하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게 중요하다. 그 1단계 프로그램으로 오 회장은 농장에 학교를 세워 라오스의 문맹 퇴치에 앞장섰다.

현재 5개 학교 1300명 학생을 대상으로 무상 교육을 실시하는데, 경북대 학생들이 4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코라오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단계적으로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이 밖에도 코라오는 각급 학교에 컴퓨터를 기증하는 한편, 매주 토요일 직원들이 거리 청소에 나선다. 축구를 좋아하는 라오스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직원들과 축구도 하고 축구 대회를 후원한다.

오 회장은 지난해 100만 달러를 기부해 부아손 총리와 함께 기부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라오스는 제2의 조국이자 제2의 고향입니다. 저를 이만큼 키워주었으니, 이젠 제가 갚을 차례죠.” 중국과 베트남이 그랬듯 라오스 경제도 발전하면서 머지않아 민족 기업이 탄생할 것이다. 민족 기업이 급성장하면 라오스 정부도 중고품 수입을 억제하고 자국 기업을 키우려 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 오 회장이 더욱 신경 쓰는 게 현지화와 라오스 돈 1킵(Kip)이라도 누락하지 않는 투명경영이다.

바이오에너지·금융업으로 2차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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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6일 오후 3시30분 비엔티안 한복판 캐피털 타워. 라오스 정부 요인들과 VIP 인사들이 대거 몰렸다. 코라오가 지은 이 건물에서 지난해 12월부터 영업을 시작한 인도차이나뱅크의 정식 개점 축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행렬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선진국의 리딩뱅크들이 쓰러지는 마당에 라오스에선 새로운 은행 설립 축하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오 회장은 이날 라오스 경제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두왕차이 피짓 부총리에게서 국가 최고 훈장을 받았다.

창업 10년 만에 코라오를 라오스 최대 기업으로 키운 오세영 회장은 이제 2단계 도약에 전력투구한다. 그동안 라오스의 개발 단계에 맞춰 운송, 가전 유통 등의 아이템에 치중한 데서 벗어나 신성장동력의 양 축을 바이오에너지와 금융업으로 삼았다.

세계적인 녹색성장 추세보다 앞서 코라오는 2006년부터 바이오디젤 사업에 착수했다. 이듬해 군인공제회, 지방행정공제회, 굿모닝신한증권이 350억 원을 투자해 코라오에너지를 설립하면서 사업 추진에 날개를 달았다. 바이오디젤 사업은 원료인 자트로파(Jatropha)의 대규모 재배가 필수적이다.

비엔티안 도심에서 우리나라 1번 국도 격인 13번 중심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40여 분 달리면 코라오의 자트로파 농장이 드넓게 펼쳐진다. 2006년 코라오가 자본과 시장, 기술을 댈 테니 라오스는 땅과 노동력을 대라는 ‘2+3 전략’을 제시한 결과 2340㎢(제주도 면적의 1.2배)의 땅을 90년 동안 임차 받았으며, 그중 10분의 1인 211.5㎢의 개발을 마친 상태다. 현존하는 세계 최대 자트로파 농장이다.

코라오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43달러 이상이면 바이오디젤 사업이 채산성이 있다고 본다. 올해 매출 30억~50억 원으로 시작해 내년 150억 원, 2012년 100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한다. “바이오에너지 사업은 라오스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농업 인구가 전체의 80%인데 그중 3분의 1만 자트로파를 재배해도 1인당 국민소득을 35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거예요. ‘라오스판 새마을운동’을 코라오가 보여주겠습니다. 자트로파 농장은 곧 ‘훌륭한 유전’ 역할을 할 겁니다.”

금융업은 지난해 12월 1일 자본금 1500만 달러로 영업을 시작한 라오스 최초 한국자본 은행 인도차이나뱅크가 시발점이다. 라오스에서 처음으로 정기적금 상품을 선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은행 이름을 인도차이나로 지은 것은 영업망을 라오스에 국한하지 않고 베트남,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반도 전역으로 확대시키겠다는 오 회장의 의지를 담았다.

“라오스 국민 중 은행을 이용하는 경우가 7%밖에 안 돼요. 은행 인가를 받을 때 장롱 속 돈을 끌어내 산업자본화하겠다고 설득했지요. 2~3년 안에 민영화를 추진하는 국영은행을 인수·합병(M&A)해 영업망을 확충할 것입니다. 이어 5년 안에 라오스 최대, 10년 안에 인도차이나반도 톱5, 20년 안에 글로벌 톱10을 목표로 뜁니다.”

여기에도 오 회장 특유의 현지화 전략이 들어간다. 은행 수익금의 0.2%를 장학사업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데 이어 각급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장학금 수혜 대상 1000명을 모집하는 작업에 들어가자 라오스 전국 학교와 학생들의 시선을 끌었다. 코라오는 올해 안에 카드사와 보험사 설립을 준비 중이다.

자동차 판매가 주력인 코라오로선 자동차보험업과 할부금융업에 매력을 느낀다. 이어 내년에 증권사, 2011년에 자산운용사를 단계적으로 설립해 종합금융업을 그룹의 핵심 역량으로 키운다는 청사진이다. 코라오는 또 무선이동통신과 시멘트 제조 등 라오스의 기간산업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동통신사업의 경우 국영기업 ETL과 제휴를 모색 중이다. 시멘트 제조는 코라오가 라오스 정부와 함께 연간 100만 톤 생산 규모의 공장을 2007년에 세웠는데, 라오스 정부의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서 대신 돈을 댄 중국 업체에 넘어간 경영권을 되찾아온다는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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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 1호 상장 이어 국내 기업 인수 추진

코라오는 올 하반기 한국 증시 상장을 준비 중이다. 현대기아차의 공식 독점 대리점으로 중고차와 신차를 판매하는 코라오의 주력 기업 코라오디벨로핑이 유가증권 시장을 두드린다. “‘한상기업의 모델’이 되자는 생각에 상장을 결심했어요. 고국에서 기업가치를 평가 받고, 고국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싶고요. ‘한상기업 1호’,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는 1등 기업’이란 이미지에 맞춰 바로 유가증권 시장으로 가려고 합니다.”

코라오 디벨로핑은 한국 증시 상장에 이어 내년에 라오스증권선물거래소에도 상장할 계획이다. 라오스증권거래소는 한국거래소(KRX)와 코라오가 공동으로 설립하는데, 라오스 국민이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로 좋아하는 10에 맞춰 2010년 10월 10일 오전 10시 개장이 예정돼 있다.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는 코라오에너지도 2012년께 상장할 계획이다.

3년 안에 바이오디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는 오 회장은 한국 증시보다 런던, 뉴욕 등 해외 증시 상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역시 기업 경영을 아는 인물이다. “다들 위기로 생각해 위축된 지금이 기회”라는 오 회장은 10년 동안 라오스에서 무차입 경영을 하며 모은 자금력(가용 현금 3000만 달러)을 바탕으로 국내 상장사 인수를 추진 중이다.

이르면 3월 안에 결과가 나올 텐데, 성사되면 재외동포 기업이 국내 기업을 인수하는 첫 사례로 기록된다. “코라오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물류, 무역, 네트워크 장비회사 등 세 곳과 접촉 중입니다. 모두 기술은 좋은데 자금이 부족하거나 해외 시장 개척이 힘든 곳들이죠.”

뼈 묻을 각오로 해외 나가라

20년 가까이 해외에서 사업을 해온 오 회장은 실패에서 성공을 일군 대표적 현장 기업인이다. 코라오 식구들은 물론 동남아 등 해외에서 기업을 일구는 코리안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해외 사업 10계명’을 만들었다. ‘현지화에 주력하고 준법경영을 하라’ 등 계명 하나 하나가 모두 오 회장의 실패와 시행착오에서 우러나온 것들로 투박하지만 더 할 수 없이 생생하다.

“지구상 어느 나라 경영학 교과서에도 없는 것들입니다. 거의 맨땅에 헤딩하면서 체득한 것이지요. 요령을 피우거나 지나치게 빨리 가려 들면 쓰러지고 맙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습관 때문에 같은 유형의 실패를 되풀이하거든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그는 특히 개발도상국에 진출하는 CEO의 필요충분조건으로 ‘겸손’을 강조한다. 절대로 현지인과 제도를 얕보지 말라고 주문한다. “개발도상국은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머리 좋은 한국 사람들이 흔히 ‘대충 하면 된다’는 식으로 행동하다가 기업이 커가는 중간 단계에서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채 야반도주하는 거예요. 선진국에서 음주 운전하다가는 감방 갈 테니 조심하는데, 후진국에선 술 마시고 함부로 핸들 잡는 식이죠. 개도국일수록 ‘정보 경영’이 필요합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라오스는 70년대 베트남전쟁 와중에 내란을 겪었고, 공산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게릴라가 75년 우파 왕정을 몰아내고 공산정권을 세웠다. 93년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외국인투자법을 시행해 개혁·개방 대열에 합류했다. 오 회장과 코라오만큼 ‘최초’란 수식어가 많이 붙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그도 해외에서 사업을 하면서 모국 코리아와 코리안의 한계를 절감할 때가 있다.

“라오스도 다른 동남아 국가처럼 화교의 파워가 막강합니다. 아마 제가 중국인이라면 지금보다 극진한 대접을 받을 거예요. 중국은 총리 등 주요 인사들이 라오스를 방문할 때마다 몇천만 달러씩 내놓습니다. 그 덕분에 중국이 라오스 지하광산 개발을 싹쓸이하고 있어요. 비엔티안 인근을 포함 7~8개의 차이나타운이 생겨났고 중국인을 상대로 한 큰 시장도 세 곳이나 됩니다. 일본도 요즘 비엔티안에서 중심 도로를 건설해주고 일장기 표석을 설치하는 등 적극 공세를 폅니다. 한국은 어떠냐고요? 95년 국교 재개 이후 1년에 250만 달러 이상 원조한 적이 없어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뭐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도 개도국에 대한 원조를 늘려야 국가 위상이 높아지고 한상의 활동 반경도 넓어지지요.”

오 회장은 베트남, 라오스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업하는 한상 대표주자다. 주변에선 이런 그를 북한이 개혁·개방을 선택할 때 자본주의를 가르칠 수 있는 인물로 보기도 한다.

어린 자식들 위해 미리 유물함 만들어

해외동포 기업 코라오는 고국의 청년실업 해소에도 역할을 한다. 코라오 전체 직원 7450여 명 가운데 한국 직원은 약 70명, 이 가운데 8명이 여직원이다. 오세영 회장은 조만간 세 명을 더 뽑아 여자 축구팀을 만들어야겠다며 웃는다. “젊은이들이 좁은 땅에서 버둥대지 말고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생각보다 경쟁력이 있어요. 자꾸 밖으로 나가 거기서 땅을 파든 샘을 파든 움직이다 보면 길이 보이거든요.”

20·30대 초반 좋은 시절을 해외에서 사업하느라 정신 없이 보낸 노총각 오세영은 베트남 사업에 실패한 뒤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귀국해 늦장가를 들었다. 그래서 둔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이다. 애비로서 아이들이 자립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줄 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의 유물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영감을 얻은 구절에 밑줄을 치고 날짜와 시간을 적고, 여행 도중 생각한 것을 메모해 넣어두지요. 아이들이 장성한 뒤 아빠의 생각과 고민을 보면 느끼는 게 많을 겁니다.”

코라오의 ‘웃는 얼굴 CI’는 고민하는 오 회장에게 큰아이가 도화지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면서 “아빠 얼굴을 로고로 하면 되잖아”라고 한 데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래서 안동 하회탈을 엎어 놓고 모티브를 얻었는데, 증시 상장과 함께 좀 더 글로벌한 이미지로 바꿀 지를 놓고 다시 고민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코라오 직원들은 “코라오! 코라오! 코라오!”, “티능! 티능! 티능!”을 외치며 업무를 시작한다. 티능은 라오스 말로 1등이란 의미다. 인도차이나뱅크 개점 축하 슬로건 중 하나가 떠오른다. “Anything is possible!(불가능은 없다)”

씨앗은 기름, 열매는 연료와 비누 원료

자트로파는…

자트로파(사진)는 특유의 냄새와 맛 때문에 들짐승의 농장 침입을 막기 위해 울타리로 쓰던 야생 낙엽수다. 인도차이나반도 등 아열대 지역에 흔하다. 이 나무 열매의 씨를 말려 짜면 바이오디젤 원료가 나온다.

자트로파 열매는 약간의 독성이 있어 식용으로 쓰지 않기 때문에 바이오디젤 원료로 쓰여도 인류의 식량난과 관련이 없다. 또 씨를 뿌린 뒤 8개월이면 열매를 딸 수 있어 3년을 기다려야 하는 팜보다 생산 효율이 높다.

라오스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아열대기후 지역이라 식물은 우기에 빨리 성장한다. 그래서 열매를 따기 좋도록 싹이 나올 때부터 위로 뻗는 가지를 잘라줘 가지가 옆으로 퍼져나가도록 한다. 열매를 따는 작업도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한다. 건기에 잘라낸 가지를 그늘에 보관했다가 우기에 꺾꽂이를 하면 자란다.

이런 갖가지 수작업을 하는 데는 남을 속일 줄 모르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라오스 농민들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다. 자트로파 열매는 바이오디젤 원료뿐 아니라 다른 용도로 활용된다. 먼저 피마자보다 조금 큰 데 광택이 없는 자트로파 검정 씨앗 3300여 개(약 3㎏)를 짜내면 1리터의 기름이 나온다.

일제 시대 피마자 기름을 수거해 군용으로 쓰던 시절을 떠올리면 이해가 된다. 기름을 짜내고 남은 깻묵 같은 검정 씨앗 찌꺼기는 비료로 쓰인다. 코라오는 이를 수입하려는 국내 비료업체와 협상 중이다. 또 열매의 육질(허스크)은 불쏘시개인 활성탄 연료나 비누 원료(글리세린 추출)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비록 활용 가치가 적은 잡목 중심의 밀림이라지만 이를 벌목하고 화전으로 개간한 뒤 자트로파를 심는다는 점에서 환경 파괴 논란이 일 수 있다. 또 자트로파의 대규모 집단 밀식에 따른 새로운 질병 발생도 경계해야 한다.

라오스 비엔티안=글 양재찬 편집위원·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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