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마틴 펠트스타인 칼럼

미국 경제 회복의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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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은 지나친 낙관론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최근 내놓은 경기부양책은 올여름 반짝효과에 그치고 말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경기침체는 기업의 과도한 설비투자와 재고 물량 누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투자효과가 나타나 기업이 투자 여력을 되찾게 되면 경기는 회복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준금리 인하 등으로 이를 지원한다.

하지만 현 상황은 사뭇 다르다. 현재 미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주가와 주택 가격 폭락이다. 최근 몇 달간 미국인의 자산 가치는 약 12조 달러(약 1경8396조원)나 줄었다. 미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75%에 해당하는 규모다. 급격한 자산 손실로 미국인의 소비는 연간 5000억 달러씩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 가격 폭락으로 인한 주택시장의 침체도 악재다. 미국의 신규 주택시장 규모는 120만 채나 줄었다. 이는 미국의 전체 GDP에서 약 2500억 달러가 감소했다는 의미다.

주가 폭락과 주택 시장 침체 등으로 미국의 전체 소비지출은 연간 약 7500억 달러가 줄어들 전망이다. 실업수당을 확대하고, 소득세를 깎아준다고 수요가 확대되진 않을 것이다. 저임금과 실업 증가가 이번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의회에서 통과된 경기부양법의 골자는 세금감면과 재정지출 확대로, 약 8000억 달러 규모다. 하지만 이 경기부양책이 산술적으로 향후 2년간 매년 4000억 달러씩 GDP를 증가시킬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유자금이 부족한 소비자들은 장기 계획을 세워 돈을 쓰기 때문이다.

또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 지출의 일부는 기업 등 다른 경제주체들이 이미 수립했던 투자 계획을 대신하는 것이다.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직접적인 소비 증가 효과는 최대로 잡아도 향후 2년간 매년 3000억 달러에 불과하다. 결국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소비 증가 효과는 소비 위축에 따른 공백(약 7500억 달러)의 절반도 메우지 못할 것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경제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소비가 줄면 기업은 생산을 줄인다. 생산 감소는 실업률을 높이고, 근로자의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금융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 건전한 금융 시스템이 자리 잡아 금융회사들의 체질이 개선되면 신용도를 엄격히 따지지 않고도 대출해줄 수 있어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금융 시스템 개혁만으로는 견조한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의 경기부양책은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세금감면도 기업과 가계의 소비를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현재 미국의 금리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급증하게 되면 금리는 오를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의 국가채무와 외국인 투자 규모를 합하면 GDP의 40%에 달한다. 2010년 말에는 60%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가 유지되면 금리가 뛸 것이고, 자동차 할부금융 등 금리에 민감한 분야의 소비 위축이 불가피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로서는 경제회복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 달러화 약세가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을까? 물가상승이 자산가치를 높여 정부·가계·기업의 채무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요소가 경기를 회복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시간만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마틴 펠트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경제학
정리=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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