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노총, 노사 화합 훼방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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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제위기를 나 몰라라 하는 민주노총의 독불장군식 행보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도 모자랄 판에 단위 사업장 노조들의 노사화합을 방해하고 있다.

지난달 27일부터 민주노총 산하단체인 금속노조는 임금 협상을 회사에 위임한 현대중공업노조를 맹비난하고 있다. 전국 산하 노조에 배포된 포스터엔 “현대중 노조는 노조이기를 포기했다” “민주노조 운동의 씨를 말리기 위해 회사와 짜고 치는 술수”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들로 도배됐다. 현대중공업노조는 강성 노동운동에 염증을 느껴 2004년 민주노총에서 탈퇴한 후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데도 ‘노사 화합’에 적극적이라는 이유로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남의 노조까지 간섭하는 판이니 노선과 다른 행동을 하는 산하 사업장 노조에 대해 어떤 횡포를 부리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얼마 전 서울메트로노조가 ‘노사평화 선언’을 하자 제명 운운하며 압력을 가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인 신창전기와 영진약품 등 노사 화합을 선언한 다른 사업장 노조도 비슷한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엄혹한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는 현실을 보라. 산하 사업장들이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적으로 여기던 사측과 화합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작금의 경제위기가 투쟁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공생의 해법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런 실상을 외면하고 막가파식 구태만 거듭한다면 그 끝은 자멸뿐이다. 산하 단체 중 최강성으로 분류되는 전교조의 조합원 수가 지난 5년 새 무려 20%나 줄었다는 것은 이런 예측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민주노총은 이제라도 국민과 조합원들의 뜻을 제대로 읽기 바란다. 사상 초유의 경제위기 속에 국민 모두가 고용안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 민주노총이 할 일은 자활을 모색하는 사업장 노조의 뒷다리 잡기가 아니다. 경영계와 머리를 맞대고 일자리 유지를 위한 중지를 모으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현대중공업노조는 노조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선택해야 할 대안을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