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속으로]6. 대중가요 … '감상용' 실종·노래방 가요만 활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표면적으로는 수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한국에서 일본의 대중가요를 접하는 것은 이미 특별한 일은 아니다.

강남에는 일본가요 전문카페들이 수두룩하며 이대앞에는 일본 CD를 파는 전문점들이 성업 중이다.

속칭 '길보드 차트' 로 불리는 길거리 손수레에서도 일본 불법복제 테이프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화위기를 말한다.

문화 식민지니 정신적 식민지라는 말을 써가며 일본문화 유입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일본가요를 표절한 노래가 연일 방송을 타는데도 그것이 표절임이 밝혀지기까지는 거의 무신경한 게 한국 대중가요계의 현실이다.

개중에는 일본 것이라면 무조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인 경우가 많다.

일본가요가 전면개방되면 설땅이 없어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인 셈인데 정말 그럴까. 분명 일본가요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 있다.

레코드 판매의 인세나 방송 출연료 등에서 가수들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관행이 정착되면서 재능 넘치는 아티스트들이 대거 가요계에 참여하게 된 게 일차적인 요인이다.

그 결과 한국처럼 인기가요 1위에 오르면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짓던 일일랑 진작에 마감했다.

90년대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최근의 일본가요에는 수준 미달작이 양산되고 있다.

주범은 노래방의 확산이다.

노래방의 시장규모는 한해 10조원에 달한다.

이는 당연히 노래방용 CD나 LD시장의 폭발적 확대를 가져왔다.

일반 CD시장규모의 40%에 육박하는 거대 시장이 형성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래방에서 부르기 쉬운 노래' '노래방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를 만드는게 음반산업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됐다.

결과는 뒷걸음질. 일본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고무로 데쓰야를 꼽는다.

작곡가 겸 레코드 프로듀서인 그가 제작한 CD 23장 전부가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고 총판매량도 1억장 이상이다.

지난해에만 5천만장 이상을 팔아치웠다.

그의 지난해 납세액은 80억원, 개인 납세부문 4위에 랭크됐다.

부동산 재벌이나 대기업 회장의 전유물이었던 고액납세자 1백위안에 대중문화인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고무로의 곡은 대개 '고무로 사단' 인 최정상 가수들에 의해 불려진다.

현 일본최고의 가수로 꼽히는 아무로 나미에를 비롯,가하라 도모미.글로브.맥스.스피드 등이 그 멤버들이다.

주로 10대 소녀들인 이들은 '더 격렬한 밤에 안기고 싶어' '내 몸은 비상구를 느껴' '한번 안으면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거야' 등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가사들을 극히 단조로운 멜로디에 담아낸다.

이들의 노래는 발매와 동시에 판매량 1위를 기록하기 일쑤다.

고무로의 성공은 결국 '노래방 가요' 를 재빨리 개척한데서 비롯했다.

이 점에서 고무로는 천재적인 아티스트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잡아낸 천재적 상인에 가깝다.

일본어를 모르는 대부분 한국인에게는 특별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곡이 대부분이다.

한국시장을 위협할 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얘기다.

고무로 사단에 못지 않게 대중 가요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게 탤런트들의 노래다.

연예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탤런트가 노래하고 가수가 드라마에 출연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탤런트의 노래는 그의 고정 팬들이 사준다는 점에서 일정수준의 판매량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수준미달이기 십상이다.

이처럼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누가 부른 노래' 를 앞세운 전략 역시 일본 대중가요의 수준을 떨어뜨리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지라 감상용 대중가요를 찾는 팬들은 서브컬처나 얼터너티브 컬처를 찾게 된다.

멜로디가 살아있는 '듣고 즐기는 대중가요' 가 오히려 대중가요의 하위개념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들은 유행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귀에 따라 듣고 싶은 노래를 찾는다.

한국 주주클럽이나 룰라의 노래를 애청하는 일본인이 나오는 것은 아직 한국가요에는 멜로디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김지룡 경제문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