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이회창 대표 갈등 봉합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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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2일 오후9시가 넘어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대표와 만났다.

全.盧 전직대통령 사면을 놓고 李대표와 갈등이 있다는 관측을 덮기 위해서다.

당대표와의 심야 면담, 그것도 청와대 본관이 아닌 관저에서 하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金대통령이 생활습관을 깬 것은 李대표의 면담 요청이 워낙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金대통령도 이날 아침 李대표의 '추석전 사면' 제기를 묵살한 것이 "마음에 걸린 것 같다" 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金대통령은 전직대통령의 사면으로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는 李대표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딱부러지게 '불가' 통보를 한 바 있다.

金대통령이 문종수 (文鐘洙) 민정수석을 통해 밝힌 입장을 살펴보면 李대표가 이 사안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모르면서 '대선 전략' 으로 써먹으려 한다고 질책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줬다.

청와대 참모들은 "金대통령의 심기는 한마디로 불쾌하다는 것" 이라고 말했다.

사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한 전권 (全權) 사항인데 왜 건드리냐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자신과 사전 조율없이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것에 '무책임하다' 고 화났었다고 한다.

金대통령은 "역사적 인식의 기초위에서 국민적 합의와 국민통합, 국가역량 결집을 위해 필요한 시점에 (사면이) 단행될 것" 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시기는 李대표가 원하는 추석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상이다.

한 관계자는 "李대표가 사면을 통한 대통합으로 金대통령과 차별화하려는데 대해, 金대통령은 역사바로세우기를 내세워 이를 정략적 자세로 평가절하해 '역 (逆) 차별화' 를 해버렸다" 고 해석한다.

청와대 내부에는 이 사안을 놓고 정치적 몫을 찾으려는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총재등 대선주자 전체에 대한 金대통령의 자존심 선언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문제는 李대표의 위상이 흔들리게 된 점이다.

金대통령이 李대표의 요청이긴 하나 만난 것도 파장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청와대측은 "金대통령이 李대표를 지원하는 것과, 역사적 사안을 다루는 것과는 별개이며 분리해서 봐야한다" 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李대표쪽의 대립 기류는 일단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李대표쪽의 아마추어적 접근자세에 청와대 참모들의 불신감은 상당해 갈등 소지가 여전하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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