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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동남아국가 국책사업 표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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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싱가포르.태국등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중인 동남아 국가들이 최근 금융위기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수십억에서 수백억달러에 이르는 소요자금의 상당 부분을 외국기업들의 투자로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주가가 급락하는등 금융시장이 총체적 위기상황으로 치닫자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추진에 가장 큰 애로를 겪는 나라는 말레이시아. 지난 10여년간 연평균 8%를 넘는 고성장을 계속해온 이 나라는 최근 몇년동안 세계 최대 규모의 건설사업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특히 2000년대초까지 1백억달러가 넘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콸라룸푸르시 일대에 약6백평방㎞ 규모의 멀티미디어 대회랑 (大回廊, MSC) 을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최근들어 사업추진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또 60억달러가 소요되는 동남아 최대규모의 수력댐 건설 계획도 사업추진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부총리겸 재무장관은 정부가 처해 있는 경제위기를 인정하며 그동안 강행해온 성장드라이브 정책의 수정의사를 밝혔다.

그는 특정 사업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추진중인 대규모 국책사업중 일부를 연기해야만 할 것" 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초까지 싱가포르 전체를 고속정보통신망으로 연결된 '정보 섬' 으로 구축한다는 '싱가포르 원 (one)' 계획을 추진중인 싱가포르도 최근 자국 화폐가치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싱가포르는 현재 '싱가포르 원' 완성에 필요한 대부분의 기반시설 건설을 마치고 세계적인 정보통신.컴퓨터업체들의 아시아지역 본부를 자국에 유치한다는 계획을 추진중이지만 외국기업들이 진출을 꺼려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다리 건설을 추진중인 인도네시아도 금융위기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나라는 최근 수입 자동차부품 가격을 대폭 인상하는등 외화유출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지난달초 국무회의에서 "인도네시아는 현실적인 경제난을 인정해야만 한다" 며 국민들에게 국책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허리띠를 더 졸라매줄 것을 촉구했다.

이밖에 심각한 경제위기로 국제금융기관과 선진국들로부터 금융지원을 받고 있는 태국과, 아직 외환위기가 심각하지는 않지만 상시적인 투기위협을 받고 있는 홍콩도 국책사업 추진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콩의 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이들 국가의 대규모 국책사업들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외국자본유치를 전제로 계획된 것들이라서 만일 최근의 금융위기가 빠른 시일내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상당수 계획들은 좌초될 것으로 보인다" 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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