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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여자' 장진 감독 "예쁘장한 여자가 스토커라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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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아는 여자’였던 존재에게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는 통속적인 줄거리를 장진 감독은 상투적이지 않은 영화로 만들어냈다. [신동연 기자]

별로 잘난 데 없어 보이는 프로야구 2군 소속 선수 동치성(정재영). 또 여자에게 차였다. 이번만큼은 사랑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사랑이 아니었나 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사는 수시로 코피를 흘리는 그에게 3개월 시한부 운명을 선고한다. 그토록 찾아헤매던 사랑은 사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그를 마음에 품고 마치 스토커처럼 지켜보던 동네 아가씨 한이연(이나영)의 존재를 동치성은 뒤늦게 알아차린다.

25일 개봉하는 영화 '아는 여자'의 뼈대만 간추리면 어쩐지 '아는 얘기'인 것 같다. 그런데도 막상 스크린에 펼쳐지는 '아는 여자'는 신선한 공기를 내뿜는 정화기 같은 느낌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지켜보는 오래된 전봇대의 사연이 극중극 형식으로 삽입되는가 하면,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있을 수 없는 '자살골'같은 해프닝이 등장해 로맨스물에서는 쉬 상상하기 어려운 웃음과 재미를 준다. 도둑과 형사, 투수가 던진 공에 맞은 타자 같은 주변인물들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사 역시 사랑에 대한 식상하지 않은 울림을 흘린다. 가장 통속적인 소재를 상투적이지 않게 풀어내는 재주, 이것이야말로 '아는 여자'를 통해 새삼 확인하는 장진(33)감독의 재능이다.

"기질적으로 사람을 잘 관찰하는 덕분인가 봐요. 예컨대 운전하다 급추월하는 차가 있으면 보통은 욕을 해버리잖아요. 저는 그 차의 운전자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영화 속에 등장시킨다면 어떻게 그릴까를 생각하게 돼요."

사실 '신선하다'는 표현은 연극판의 '무서운 아이'였던 그가 영화판에 들어온 이래 가장 많이 들은 칭찬이다. 마치 뮤지컬의 한 대목을 옮겨온 듯,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장면을 곧잘 연출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말이 칭찬만은 아닌 것도 안다.

"제가 일부러 관습적인 영화스타일을 포기하고 연극적인 스타일을 차용한 게 아니었잖아요. 처음'기막힌 사내들'을 찍을 때 도대체 영화란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모르고 시작했으니까. 의도하지 않은 지지를 얻은 셈이죠."

이런 맥락에서'아는 여자'는 그의 가장 영화적인 영화로 꼽힐 만하다. 불연속적인 화면들에 동치성의 내레이션을 입혀 매끄러운 리듬을 입혀가는 방식 같은 것은 그가 영화라는 매체와 노는 법에 어느 정도 손이 익었다는 증거다. 이런 영화적 유희가 지나친 대목도 있다. 카메라를 고정시키지 않고 '들고 찍는'기법을 시도한 초반부는 카메라 움직임이 정교하지 못해 리듬감보다는 불안감을 준다.

"현장 모니터로 확인할 때는 느낌이 참 좋았는데, 대형화면으로 보면서는 저도 이건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들고 찍기 경험이 없던 탓이죠."

젊음 때문일까, 그는 실수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영화마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 온 그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남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성을 가미한 코미디에 능한 그에게 멜러물의 요소가 강한 '아는 여자'는 새로운 과제였다.

"제 또래 남자들이 공감할 만한 얘기예요. 연애에 거듭 실패하다 보면 사랑이 도대체 뭘까 회의가 들잖아요. 스크린에 투영했을 때 관객이 어,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하는 것이 제대로 된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는 여자'를 보면 이나영씨 같은 예쁘장한 여자에게 나도 한번 스토킹 당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죠. 하, 이러니 또 남성적인 시각의 영화가 돼버렸네."

영화에는 도둑을 놓아줬다가 장물아비의 누명을 쓴 동치성을 취조하는 형사역으로 감독 자신이 등장한다. 단정한 외모와 달리 세상살이에 이력이 난 듯한 표정으로 대사를 읊조리는 대목은 감독.시나리오 작가.프로듀서의 세 역할을 고루 하면서 문화창작집단'필름있수다(약칭 수다)'를 이끄는 그의 카리스마를 엿보게 한다. 감독 자신의 신작을 포함, 준비중인 작품이 네 편이나 돼서 수다(SUDA)의 영어문자를 교묘하게 집어넣은 새 자회사'어나더 선데이'를 차릴까도 궁리 중이다.

이후남 기자<hoonam@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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