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바마 내각에 아시아계 대약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공석인 상무장관에 중국계인 개리 라크(59·사진) 전 워싱턴주 주지사를 지명했다. 라크의 지명으로 오바마 내각에는 아시아계 인사가 스티븐 추(중국계) 에너지장관과 에릭 신세키(일본계) 보훈장관을 포함해 3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끊임없이 주창해 온 라크 전 주지사는 미국 산업의 발전을 촉진할 적임자”라며 “그는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라크는 “미국 경제의 성공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전 세계 시장에 상품과 서비스·아이디어를 수출하는 데 달려 있다”며 “모든 미국인이 ‘미국인의 꿈’을 다시 성취해 내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라크는 중국계 이민 3세로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광둥성, 어머니는 홍콩 출신이다. 방송기자 출신의 부인은 상하이 출신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소속 장병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이후 시애틀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살았다. 라크는 장학금과 재정 보조, 아르바이트 등으로 등록금을 내며 명문 예일대 정치학과와 보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검사로 일하다 1982년 워싱턴주 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97년 중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 워싱턴주 주지사가 됐다.

주지사 시절 라크는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떠오르는 스타’였다. 2003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 때 라크는 민주당을 대표해 부시의 정책을 반박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이 연설로 인해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자 두 번째 주지사 임기를 마지막으로 정계를 떠났다. “워싱턴주를 사랑하지만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게 그의 해명이었다. 이후 워싱턴주의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해 왔으며,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라크는 워싱턴 주지사 재임 중 여덟 차례나 무역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고, 광저우에 워싱턴주 무역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중국과의 교역 확대에 앞장섰다. 그러나 상무장관 직에 오르면 위안화 환율 조작 의혹과 지적재산권 침해 등 까다로운 이슈를 놓고 중국과 씨름을 벌여야 할 전망이다. 미국 기업계에선 라크가 한국·콜롬비아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앞서 오바마는 중국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추를 에너지장관,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일본계 에릭 신세키를 보훈장관에 기용했다. 미국에서 인구가 전체의 약 5%인 아시아계가 3명의 장관을 배출한 것은 괄목할 만한 정치적 발전이다. 인구가 아시아계보다 세 배가량 많은 히스패닉계가 2명(켄 살라자르 내무, 힐다 솔리스 노동)의 장관을 배출한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오바마 내각뿐 아니라 미국 정가에서도 아시아계의 부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선 베트남 난민 출신인 안 조셉 카오 변호사가 베트남계로는 최초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공화당의 오바마로 부상한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인도계다. 한국계 미국인으론 헤럴드 고(한국명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학장이 국무부 수석 법률 고문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