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牛脂라면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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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라면업체와 검찰간 명예를 건 7년여의 법정공방이 라면업체의 승리로 끝났다.

우리는 대법원의 이번 '라면판결' 을 보면서 정부.검찰.언론이 그때 제자리에서 제역할을 제대로 했던가 하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89년 사태는 이렇게 발단했다.

식품회사가 쓰는 마가린과 쇼트닝에 미국에서 수입한 공업용 우지가 쓰인다는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들어왔다.

검찰이 내사에 착수하면서 라면에 공업용 우지를 사용하고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인간이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우지를 들여와 국민위생을 크게 그르쳤다는 언론의 비판이 시작됐다.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서고 보사부는 관련업체에 대해 긴급검사를 실시했으며 검찰은 관련 5개업체 대표를 구속했다.

이 소동속에서 당시 시장점유율 최고를 자랑하던 한 식품회사는 급전직하로 추락했고 1천여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먼저 행정당국이 얼마나 소신이 없었던가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보사부는 공업용 우지라도 정제된 것이기 때문에 인체에는 해가 없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여론이 들끓자 유해쪽으로 후퇴해 버렸다.

검찰도 전문가적 입장에서 이 사안을 처리했어야 옳았다.

식품위생에 관한한 국민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특히 청소년들이 상용하는 라면에 이상이 있다면 유.무해 판정에 더 신중한 조사를 거친 다음 발표했어야 했다.

언론 또한 책임을 면할 길 없다.

행정당국이나 검찰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이를 지적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검찰발표만 믿고 오로지 식품회사 매도에만 바빴다.

사회 전체가 마녀사냥에 몰두했던 꼴이다.

한때의 해프닝으로 돌리기에는 아직도 우리사회 전반엔 라면파동과 같은 감정적 마녀사냥풍조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치.경제 현장에 돌고 있는 음해와 손가락질이 그때와 조금도 다를바 없다.

전문성.합리성.신중성이 결여될 때 사회 전체가 마녀사냥에 들뜰 수 있다는 경고를 라면파동에서 새삼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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