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금호주민들 표정·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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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정일 (金正日) 비서는 자신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金비서의 소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아직도 김일성 (金日成) 배지를 달고 있으며, 김정일이 언제쯤 국가주석에 취임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양화항 출입국검사소 직원의 답변이다.

다른 주민들의 답도 비슷했다.

"인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추대행사를 갖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자신 (김정일) 께서 허용을 안하신다" 는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지연' 을 겸손함으로 돌리려는 주민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방북일정중 가장 처음 만난 9명의 양화항 안내선박 출입국 검사원들은 대표단과 내외신 기자들에게 겸손하고 순박한 인상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선생님' 이란 호칭을 사용했고 협조를 요청할 때마다 '고맙습네다' '부탁합네다' 등 인사를 깍듯이 해 이번 행사를 앞두고 당국의 상당한 배려가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나진해운대학을 나왔다는 한 검사원은 대표단에 대한 검역이 진행되는 사이 한나라호 항해사에게 북한 해사 (海事) 용어를 영어와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가르쳐 주었다.

북한땅인 양화부두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바로 거쳐야 할 곳은 경수로 공사를 위해 문을 연 '양화항 세관검사소' 와 맥주.평양소주등 술과 음료수를 파는 '양화카운터' 란 상점. 이곳에 근무하는 2명의 미녀 복무원은 "멀리서 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라며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장선섭 (張瑄燮) 경수로기획단장이 "뭐라고 불러야 되느냐" 고 묻자 "필요한대로 불러주십시오" 라고 활달하게 말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는 남쪽 대표들과 기자들의 요청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양화항 인근에는 제복차림의 세관원, 경수로대상사업국 직원들을 제외하고 일반주민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양화카운터의 아가씨들과 달리 미소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한결같이 시커먼 구릿빛 얼굴에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그나마 이 지역은 풍부한 수산물에 논과 옥수수밭이 있어 다른 지역에 비해 제대로 먹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금호지구는 이제 더이상 한적한 어촌마을이 아니었다.

경수로사업으로 고위관리에서 근로자.여성 복무원까지 평양사람들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수로 부지내에는 평양에서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 의 금호지구 분점까지 문을 열었다.

리셉션에서 만난 북측 인사들은 대부분 남한 실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듯했고 다소 민감한 질문도 자연스레 받아 넘기는등 전례없이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착공식의 북측단장인 허종 (許鐘) 외교부 순회대사등 북한 관리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남한을 경수로와 관련시키는 언급을 삼갔지만 남한이 경수로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북측의 한 안내원은 경수로를 남한이 지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남조선이 우리보다 잘 살고 있는 것으로 안다" 면서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내면 나라가 망하지 않겠느냐" 고 묻기도 했다.

세관원.복무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정치적 문제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민족이 좋은 사업을 한다니까 기분이 좋다" 고 말했다.

한국인 근로자들 80여명이 이곳에서 건설작업을 하며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었다.

5천달러 (4백50만원)가 넘는 월급과 자가용등을 받는 우리 근로자들의 처우를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북한측이 이런 문제에 어떤 대응방식으로 북한 주민들의 괴리감을 처리할지도 앞으로의 관심사로 느껴졌다.

공사가 본격화해 수천명의 우리 근로자들이 북적거리게 되면 이같은 문제는 더욱 현실화할 수 있다.

우리 근로자들이 작업을 시작한지 불과 한달도 안되는 기간에 북한 주민들과 안내원들은 자본주의의 생리와 방식을 어느 정도 실감하게 됐을 것이다.

한국의 첨단기술과 장비가 북한땅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북한 전역으로 알려지는 것도 결국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북녘땅 항구마을 금호지구에서 울려퍼진 착공 발파음은 북한체제와 남북관계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일지 모른다.

경수로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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