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 몸과 마음] VIP병실, 좋기만 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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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대학병원 의사로 근무하던 시절 이야기다. 하루는 복통 때문에 입원한 ‘귀한 집’ 장남의 주치의가 됐다. 병원 생활이 반가울 리 없는 열 살 소년은 입원 첫날,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나와 대면했다. 다행히 입원 후엔 시행된 각종 힘든 검사를 잘 참아내는 대견함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열흘간 지속된 검사에선 원인이 안 나왔고, 복통은 여전히 아이를 괴롭혔다. 이럴 때 남은 카드는 외과 의사가 직접 배 속을 들여다보며 이상을 찾는 진단용 개복수술뿐이다. 물론 그래도 원인은 미궁에 빠질 수 있다. 나는 최대한 다른 묘안을 찾기 위해 해당 분야 교수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분들 역시 개복수술을 권했다.

마침내 나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VIP(유명 인사) 보호자는 젊은 여의사의 말을 일축했다. 대신 곧바로 평상시 친분 있던 고명하신 교수님-물론 그는 어린이 복통 전문가가 아니다- 과 상의했고, “스트레스성 복통일지 모르니 당분간 상태를 지켜보자”는 결정을 내게 통보했다. VIP 환자가 부담스럽긴 고명한 교수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나로선 식은땀을 흘리며 아파하는 아이를 진통제로 달래가며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6주가 지났지만, 아이의 통증이 날로 심해졌다. 마침내 보호자는 수술에 동의했다. 다행히 집도의가 수술장에서 복통의 원인을 발견해 제거함으로써 결과는 해피 엔딩이었다.

이 소년처럼 VIP 환자로 특별 대우를 받다가 오히려 남다른 고생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병원에선 ‘VIP 신드롬(증후군)’으로 불리는데 주로 의료진이 너무 조심하며 환자의 편의를 봐주다 발생한다. 위험이 동반되는 진단·치료 시기를 늦추거나 교과서적인 치료 원칙을 어기고 환자의 주장에 휘둘리는 것이다.

VIP 병실(특실) 역시 치료 측면에선 일반 병동보다 불리한 점이 있다.

일반 병동은 비슷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한 병동에서 치료받기 때문에 의사·간호사·장비 등을 이용하기가 쉽다. 예컨대 위암 환자는 외과 병동에 입원하는데 외과의사와 외과환자 전담 간호사가 병실에 상주한다. 또 의료장비도 외과환자 위주로 비치돼 있다.

반면 특실 병동엔 온갖 진료과 환자가 VIP라는 공통점 때문에 모여 있다.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진료과 특성에 맞는 특수시설이 완비된 일반 병동보다 불리할 수 있다. 실제 의료진이 수시로 상태를 관찰해야 하는 환자, 위중해질 가능성이 있는 환자 등은 VIP 병동보다 일반 병동 입원이 권장된다.

다음 달 개원하는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에 하루 입원료 400만원인 VIP병실이 생긴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위화감 조성과 대형 병원들 간의 VIP병실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인실 하루 입원료가 1만원(환자 부담)인 점을 고려하면 있을 수 있는 걱정이다.

하지만 VIP병실 환자를 위한 VIP치료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VIP병실은 단지 철저한 프라이버시와 호사스러운 입원실을 원하는 VIP에게 필요한 병실일 뿐이다. 내게 입원료와 무관하게 병실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나는 당연히 일반병동 1~2인실에 입원할 것이다.

황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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