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父情'에 석방된 절도 고교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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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남의 지갑을 훔친 고교생 아들을 자수시켜 법정에 서도록 한 아버지가 숨지자 법원이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을 믿는다" 며 관용을 베풀어 화제다.

서울가정법원 소년1단독 신명중 (愼明重) 판사는 20일 80만원이 든 지갑을 훔쳤다가 자수한 張모 (17.D고3) 군에 대해 불처분 결정을 내렸다.

불처분 결정은 일반 성인범의 경우 '무죄' 선고에 가까운 처분이다.

환경미화원 아버지와 고물상 어머니를 둔 張군이 버스정류장에서 한 여성의 손지갑을 훔친 것은 지난 3월말. 지갑에는 10만원권 수표 5장과 현금 30만원이 들어있었다.

張군은 4월중순 이 돈으로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등을 사입고 집으로 들어갔다.

새 옷을 본 어머니는 "어디서 난 옷이냐" 며 아들을 다그쳤고 張군은 며칠만에 지갑을 훔친 사실을 실토했다.

아버지는 "환경이 어렵다고 잘못된 길로 빠져서는 안된다" 고 아들을 크게 나무란 뒤 경찰서로 데려가 자수시켰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張군은 이보다 20일쯤 전에 물건을 훔친 사실도 털어놓았고, 피해신고가 들어온 이 사건으로 소년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단기보호관찰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지갑을 잃은 여인이 나타나지 않아 이 사건은 계속 피해자를 찾느라 재판이 지연됐다.

끝내 피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피해자없이 張군의 진술만으로 재판이 시작됐다.

이 사이 평소 건강이 좋지않던 아버지는 아들의 두번에 걸친 절도행각에 실망해 자책하다 아들을 경찰에 자수시킨지 1주일만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날 법정에는 張군의 어머니가 나와 "남편의 뜻대로 아들의 버릇을 고쳐 바른 인간이 되도록 엄벌에 처해달라" 며 울먹여 주위를 숙연케 했다.

張군은 "아버지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 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愼판사는 "많은 부모들이 비행을 저질렀더라도 자식의 범죄를 감싸기 바쁜데 張군 부모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런 부모의 자식이라면 잠시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바르게 자랄 것으로 믿고 불처분 결정을 내렸다" 고 밝혔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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