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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經은 조선 선비의 마음을 해독하는 비밀 코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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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호 06면

『심경(心經)』 이야기 ①
1.『심경(心經)』이란 책 이름을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다. 선비들의 책장 속에 꽂혀 있던 조선 유학의 가위 ‘교과서’였는데, 지금은 거의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역시 문명의 축이 바뀌었다.

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이 책은 서구의 동양학 연구에서도 전혀 주목되지 않았다. 유교 연구의 권위자인 컬럼비아대의 드 베리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도산서원에 들른 그는 도서관에서 『심경』이라는 낯선 제목의 책을 발견한다. 그 직전 해인사에 들러 『반야심경』 목판 카피본을 기념선물로 받은 터라, 그는 이 책이 『반야심경』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퇴계는 같은 유학의 일파인 양명학조차 발을 못 붙이게 한 이단 배척론자였다. “그런 퇴계가 불교의 핵심 경전을 자신의 서재에 두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고개를 갸웃하며 책장을 펼쳐 보던 그는 이 책이 ‘새로운 유교’인 주자학의 교범임을 알고 실소했다고 한다(de Bary, Neo-Confucian Orthodoxy and the Learning of the Mind-and-heart).

이 책의 존재는 중국의 유학자 지식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성백효 교수의 증언에 따르면 한말 독립운동을 하던 지사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중국 서적을 중개했는데, 국내에서 이 책을 주문하면 예외 없이 『반야심경』이 배달되곤 했다고 한다(성백효, 『역주 심경부주』 해제). 이 책은 유독 조선 유학에 유행했고, 일본의 경우 막부 말과 메이지 초기 유교 행동주의자들이 이 책을 받들었다. 기이하지 않은가. 『심경』이 퇴계 같은 은둔형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혁명의 행동가들을 떠받친 정신의 토대라는 것이….

2.『심경』을 편찬한 사람은 중국 송대의 서산(西山) 진덕수(眞德修·1178~1235)다. 주자의 고제로서 마음의 훈련에 관한 “성현(聖賢)의 격언을 취해” 이 책을 만들었다.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의 경구, 그리고 북송 유학자들과 스승 주자의 잠명(箴銘) 가운데 서른일곱 조항을 뽑고, 그 아래 간략한 보충과 해설 격 경구들을 덧붙였다. 원대의 정민정(程敏政·?~1499)이 이들 주석이 너무 소략하고 잡박하다 하여 대폭 보완해 『심경부주(心經附註)』를 간행했는데 이 확장본이 조선에 유통됐다.

퇴계는 이 책을 33세 때인 성균관 유학 시절 처음 접했다고 한다. 송대 어록체가 많이 섞인 이 책을 읽는 데 처음 꽤 애를 먹은 듯하다. “다른 사람은 구두조차 떼지 못했으나 선생은 문을 닫고 여러 달 연구한 끝에 대강을 이해할 수 있었다.”(『퇴계선생언행록』)

그는 이 책을 통해 “심학(心學)의 연원(淵源)과 심법(心法)의 정미함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도산에 물러나 은거할 때 아침에 깨어나면 이 책을 유장하게 읊음으로써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신명(神明)처럼 믿었고, 엄부(嚴父)처럼 공경했다.”

그는 이 책과 더불어 살았고,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훈련시켜 나갔다. 퇴계를 알려면 이 책과 더불어 오랫동안 함영(涵泳), 그 물속에서 헤엄치며 살아 보아야 한다. 조선 유학을 알기 위해서도 이 책을 알아야 한다. 선비들의 내면과 정신의 비밀 코드가 여기 들어 있다. 그들의 때로 이해하기 힘든 행동, 불가해한 정치문화를 알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3. 현대인이 『심경』에 접근하기는 매우 불편하다. 무엇보다 언어가 달라졌다. 한문의 개념과 사유 지도는 유럽 언어의 번안식 어휘와 어법을 축으로 하고 있는 현대 한국어와 천지현격(天地懸隔)으로 달라졌다. 책의 구성을 보더라도 분절된 조목형이라 체제와 일관성을 갖추고 있지도 않고, 또 각자의 조항들은 고유의 맥락에 대한 선이해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 장애는 오히려 다루기 쉽다. 가장 어려운 것은 문화적 습관과 태도다. 현대인은 ‘마음의 제어와 훈련’이라는 개념이 아무래도 낯설다. 마음은 저 알아서 가는 것이고, 문제는 대체로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욕구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고 조정하는 책임은 당연히 기업과 정부에 있는 것, 그래서 우리는 늘 밖을 쳐다보고, 밖을 향해 소리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유교는 좀 달리 자신부터 돌아본다. 자신을 놓치고 세상에 혼란을 더하는 책임은 다름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화살이 과녁을 맞히지 못하면 궁수는 자신을 돌아본다. 군자도 마찬가지다.” 유교는 본시 성찰(省察)과 내면의 학문이다.

한사코 체(體)와 용(用)을 가르는 것도 도저한 내면성의 증좌다. “바탕(體)이 없는 적응(用)은 표피적 처방에 그치거나, 근원 없이 웅덩이에 고인 샘물처럼 곧 말라 버릴 것이다.” 만일 유교가 외면성만이었다면 공자 이래 유교 ‘혁신’의 역사는 쓰이지 못했을 것이고, 조선 유학의 하늘에 명멸한 수많은 ‘개성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유교는 전승된 에티켓을 관습의 이름으로 강요하는 권위적 체계가 아니다. 유교는, 특히 주자학 이래의 ‘새로운 유학(Neo-Confucianism)’은 이름 그대로 심학(心學), 즉 내면의 학문이고, 마음의 기술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다시 기억하자.

『심경』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 마음(人心)은 위태롭고, 우주적 마음(道心)은 미약하다. 정밀하게 살피고 일관되게 노력하여, 진정 그 중(中)을 잡으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이 오래된 구절이 유교가 제시한 ‘마음의 기획’을 압축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대체 ‘사람 마음’은 무엇이고, 내가 겁 없이 의역한 ‘우주적 마음’은 또 무엇인가. 이 사이에서 무슨 훈련을 어떻게 하라는 것이며, 그 도착지는 대체 어디인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 유학의 거장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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