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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국무 방한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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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방한 이틀째이자 마지막 날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의 하루는 짧기만 했다. 1박2일이라고는 하지만 서울 체류 시간은 사실 20시간 남짓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그는 20일 한미연합사령부, 한·미 외교장관 회담, 청와대 예방 및 오찬, 국무총리·여성 지도자 면담, 이화여대 강연,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격려 등 숨쉴 틈 없는 빡빡한 일정을 분 단위로 소화했다.

그의 방한 일정을 지켜본 한 정부 당국자는 “클린턴 장관은 일본과 인도네시아에 이어 한국에서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다”며 “그럼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을 곁들이는 등 시종일관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찾은 국빈급 장관=클린턴 장관은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오찬을 함께했다. 이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은 접견과 오찬을 합해 모두 1시간40여 분을 보냈다.

오찬에 앞선 접견에서 이 대통령은 ‘Have a seat please’(앉으세요), ‘OK, good’(좋습니다)이란 영어를 섞으며 클린턴 장관을 환영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이 조금 어려운데 이렇게 와 주셔서(고맙다)” “한국과 미국은 말 그대로 혈맹”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클린턴 장관은 “감사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대통령님을 만나 뵙길 고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배석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주 이라크 대사 내정 사실을 염두에 둔 듯 “남북문제를 벗어나게 돼 시원섭섭하겠다. 수고했다”고 하자 힐 차관보는 “한국의 사촌인 북한과 일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찬은 청와대의 외빈접견용 목조 한옥인 상춘재에서 고구마편, 게살 밀쌈말이, 잣죽, 삼색전, 야채 잡채, 한우 갈비구이와 곶감 등 한식 메뉴가 제공됐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에 대한 환담도 오갔다. 이 대통령은 “김치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고, 건강에도 좋은 전통 음식”이라며 “오바마 대통령도 전화통화에서 ‘불고기와 김치를 하와이에서 즐겨 먹었다’고 하더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클린턴 장관은 “다이어트에도 좋은 건강식으로 알고 있다. 경이로운 식품(magic food)”이라고 답했다. 클린턴 장관은 오찬 후 “정말 맛있었고, 대화도 풍요로웠다”며 “한국 국민이 환대해 주고 아침 신문에도 크게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진행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예정보다 10여 분 늦은 9시50분쯤 시작됐다. 회담에선 아침에 내린 눈이 화제였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서울에 눈이 왔다”고 말문을 열자 클린턴 장관은 “눈이 온 것이 길조인가? 그렇다면 그건 내가 여기(한국)에 온 덕택”이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클린턴 장관은 “영부인 시절 방한으로 좋은 기억이 있는 한국을 첫 해외 순방지 중 하나로 찾게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한·미 관계는 지역적 관계를 넘어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평화 등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전략적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북핵 문제와 북한의 최근 긴장 고조와 관련해 언급하는 대목에선 두 손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를 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여성 파워 과시한 클린턴=이날 오후 국무총리 면담을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친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후 시간의 대부분을 이화여대에서 보냈다. 그는 강연에 앞서 한나라당 나경원·조윤선·이혜훈·정미경 의원, 민주당 김유정·전현희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 등 7명의 여성 정치인을 만났다. 우주인 이소연씨와 김민전 경희대 교수, 서현진 성신여대 교수와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 김미형 금호아시아나그룹 부사장도 함께했다. 클린턴 장관은 도착시간이 늦어져 이들과 10여 분간 인사와 환담만 하고 헤어졌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대선에 도전하는 걸 보고 싶다”는 덕담도 건넸다. 민주당 김유정 의원은 “참석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당신이 여성들의 롤 모델(본보기)이라고 입을 모았다”며 “힐러리 책을 가져와 사인을 받는 의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화여대로부터 명예이화인 증명서를 받고 ‘여성의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하고, 장소를 이동해 주한 미대사관 직원들을 격려한 뒤 서울을 떠났다. 클린턴 장관은 중국행 기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10여 분간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정용수·백일현·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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