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훈훈한 정 가득한 정선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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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몇몇 친구들과 함께 지난달 말 강원도 정선에 갔다.

토요일 오후 직장일을 마치고 밤늦게 출발한 우리 일행은 새벽 3시가 돼서야 정선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코 끝까지 상쾌하게 해주는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한달을 준비한 정선기행은 정선읍에서 화엄약수로 가는 길에서 엉망이 되고 말았다.

무리하게 달려온 때문이지 우리를 태우고 간 승합차가 엔진 과열로 멈춰버리고 만 것이었다. 우리는 대책회의를 가진 끝에 차는 폐차시키기로 결정하고 일정을 대폭 축소해 일반버스로 이동이 가능한 몇 군데만을 돌아보기로 했다.

날이 밝자 우리는 화엄약수.화엄동굴.조양천 등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빠듯한 우리의 여행경비는 예기치 않는 차량고장으로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차비를 아껴보려고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 탔지만 집에 올라갈 차비를 제외하니 저녁식사비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이리저리 쉴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당이 넓고 나무가 많은 집을 하나 발견했다.

일단 들어가보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힘들고 지친 우리는 우선 쉬고 나중에 양해를 구하자는 생각에 그 곳에 돗자리를 깔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인인 듯한 아저씨 한 분이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어색해하는 우리를 보고 그 분은 "집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요. 편히 쉬다 가세요" 라면서 서둘러 현관으로 들어가셨다.

비록 차량 고장으로 고생하고 정선을 충분히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집주인 아저씨의 이 한마디는 정선을 찾은 우리를 기쁘게 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여행자들이 자신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조금씩만 가져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선에서 우리를 트럭 뒤에 태워주신 부부, 고장난 차를 끌어다 준 아저씨, 그리고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준 아이들. 아름다운 정선과 함께 나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김영애〈서울양천구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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