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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쏟아지는 패러디, 표현 자유냐 인권 침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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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신용불량자 등에게 강제 징수하는 국민연금이 물의를 빚자 이를 영화 ‘옹박’에 빗대어 풍자한 패러디.

▶ 영화 ‘하류인생’을 끌어들여 만두 파동을 비난한 패러디.

지난주 불량 만두 파동이 터지자 사이버 공간에서는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최민식씨가 "15년간 군만두만 먹었다"며 절규하는 모습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간접적으로 전달했다.

사회의 특정 현상이나 정치인.연예인들의 행태를 풍자한 패러디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 포털 사이트 중 하나인 다음에는 '패러디'라는 주제어로 870여개의 카페가 등록돼 있고 20만명 이상이 가입한 곳도 있다.

1990년대 말 일부 시사 사이트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패러디가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 인터넷 디지털카메라 동호회 사이트의 시사 갤러리에는 지난 5개월 동안 2500여개의 작품이 올라 있을 정도다.

패러디에는 기존 영화 포스터에 풍자 대상의 얼굴을 합성한 뒤 문구를 살짝 비튼 포스터 패러디, 노래의 원곡 멜로디에 가사만 바꿔 부르는 노래 패러디, 만화책에서 따온 장면들에 정치인 등의 얼굴을 오려붙이고 대사를 넣는 만화 패러디 등이 대표적이다.

패러디를 본격적으로 확산시킨 것은 지난해 11월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소재로 만들어진 '대선자객'이다. 정치인들의 얼굴을 무협만화에 합성하고 풍자적 대사를 넣어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어 지난 3월 탄핵안 가결과 4.15 총선 등 정치 이슈와 맞물려 수천개의 패러디가 쏟아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투표용지 휘날리며' 등 패러디 포스터로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국민연금.불량 만두 등 사회 현안에서 한국행을 거부한 축구감독 메추 등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은 만들기와 이해하기가 쉬운 영화 포스터 패러디가 유행이다.

문화비평가 김종휘씨는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숍 기술이 대중화하면서 네티즌들이 글 대신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이미 공인된 이미지를 비틀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패러디가 유행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인권침해 논란=패러디의 확산과 함께 저작권과 초상권 침해, 명예훼손 등의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패러디를 둘러싼 법적 논란은 2001년 7월 서태지씨가 자신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이모씨를 저작권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공론화됐다. 당시 재판부는 "비평이나 풍자 없이 원곡을 이용해 단순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패러디로 보호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지난 11일에는 특정 정치인에 대한 비방 패러디물을 제작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학생 신모(27)씨가 불구속 기소되는 등 패러디에 대한 법적 제재가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특정인에 대한 고의적 비방과 명예훼손적 요소가 다분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된 경우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숭실대 강경근(법학과)교수는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선거는 예외"라며 "정치인의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인터넷에서 패러디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선거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반면 네티즌들은 조롱과 풍자가 기본 정신인 패러디를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패러디 작가 등 40여명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패러디 작가연대'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패러디 작품 전시회를 열고 "현행 선거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교수는 "패러디는 네티즌들의 놀이문화일 뿐"이라며 "사이버 공간의 콘텐츠를 기존의 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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