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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삶’ 살았던 김수환 추기경의 유품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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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수환 추기경의 유품이 18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박물관에서 공개됐다. 한 장애아동이 그려준 초상화와 녹슬고 테가 부러진 안경, 미사 때 착용한 신발·양말·장갑, 가계 내력을 담은 책자인 ‘김수환 추기경의 뿌리 3대’ 등이다. [사진공동취재단]

 고 김수환 추기경의 유품에는 평생을 ‘무소유의 삶’을 살다 영면한 그의 숨결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장례위원회와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18일 오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김 추기경의 유품을 일반에 공개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김 추기경이 생전에 쓰던 안경 5점이었다. 박물관 2층 ‘김수환 추기경 전시관’의 전시대 위에 놓인 안경들은 너무 오래 사용해 안경테가 군데군데 부러져 있었다. 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잔인 ‘성작’과 그 받침인 ‘성반’은 금속 재질이었지만 광택이 거의 사라지고 녹슨 부분마저 있었다.

안내를 맡은 교학부처장 변종찬 신부는 “추기경의 지위라면 많은 선물과 화려한 제구를 받게 되지만 추기경님은 예전부터 사용하시던, 소박하고 검소한 제구만 고집하셨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모양의 열쇠고리 수십 개도 벽면 한쪽에 걸려 있었다. 아이들이나 국내외 신자, 지인들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작은 선물이라도 버리지 않고 모아둔 추기경의 자상한 성품이 느껴졌다.

3층의 ‘추기경실’에는 선물로 받은 그림과 사진 등이 벽에 빼곡히 걸려 있었다. 특히 한 장애 어린이가 김 추기경을 그린 크레파스화는 추기경이 가장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변 신부는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분이셨다”며 “유품들을 보면 사제의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각계 인사 조문 행렬 이어져=이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시절 ‘쓴소리’를 했던 김수환 추기경 빈소에 조문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쯤 검은색 중절모에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수행원 10여 명과 함께 성당에 도착했다. 방문록에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쓴 그는 김 추기경의 시신이 유리관 속에 안치된 대성전으로 들어섰고 관 앞에서 눈을 감은 채 합장을 하며 애도를 표했다. 그는 취재진과 만나 ‘김 추기경과 인연이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살짝 웃으며 “인연이 깊다”고 답했다. 그는 “사람이 때가 되면 가는 것이지만 어려울 때 도와주시고 조언을 해주고 가셨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애석해했다.

또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노신영 전 국무총리, 한명숙 전 국무총리, 손병두 서강대 총장, 박홍 전 서강대 총장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 등 임원진 10여 명과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 삼성그룹 사장단 11명,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등 현대·기아차그룹 사장단 17명, 강유식 (주)LG 부회장 등 LG그룹 계열사 CEO들이 명동성당을 찾았다. 조석래 회장은 “어려운 이웃과 항상 함께하면서 우리 사회에 바른 길을 제시해 주신 큰어른이셨다”고 애도를 표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도 조문을 다녀갔다. 김 전 회장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일을 많이 하셔서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가실 것”이라고 했다.

연예계에서도 이상용, 안성기, 문성근, 김수희, 바비 킴 등이 빈소를 찾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뽀빠이’ 이상용씨는 “추기경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때는 내가 ‘유치원 때 쓰던 모자를 아직도 쓰고 계십니까’라고 물었을 때”라고 전했다.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씨는 “늘 아버지에게 힘이 되어 주셨던 기억이 크게 남는다. 추기경의 삶을 따라서 살 방법은 없지만 장기 기증은 따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정강현·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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