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미군 아프간 보급기지 폐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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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의 핵심 보급기지 역할을 해 온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미국 공군기지 폐쇄안이 19일 의회에서 통과될 전망이라고 외신들이 전했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집권 아크졸당은 18일 자체회의에서 기지 폐쇄 법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쿠르만벡 바키예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3일 러시아 방문 기간 중 마나스 공군기지를 폐쇄한다고 발표한 뒤 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했다. 의회에서 폐쇄안이 통과되면 미군은 180일 안에 철수해야 한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 전쟁에 들어가면서 마나스 공항을 병참용 공군기지로 운영해 왔다. 미군은 마나스 기지에 수송기 9대를 배치하고 매달 아프간 현지로 보급물자 500t을 수송했다. 기지 임차비 6300만 달러(920억원)를 포함해 매년 1억5000만 달러가 키르기스스탄에 지원됐다.

8년간 운영돼 온 기지가 갑자기 폐쇄 수준을 밟게 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미국에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가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앞마당인 중앙아시아 지역에 들어선 미군 기지를 집중 견제해온 러시아는 바키예프 대통령에게 20억 달러의 차관과 1억8000만 달러 규모의 채무 탕감, 1억5000만 달러의 무상 금융지원 등 파격적인 선물보따리를 약속했다.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국가였던 7개국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신속대응군을 창설키로 한 러시아는 마나스 기지를 신속 대응군의 모(母)기지로 활용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기지 폐쇄가 기정 사실화됨에 따라 미군은 새로운 보급 루트와 기지를 찾아야 한다. 내륙 국가인 아프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병참 보급 루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파키스탄의 항구 도시인 카라치에서 아프간 남부를 거쳐 미군 기지로 통하는 육로 코스와 마나스 기지를 통해 공중으로 아프간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신화통신은 “파키스탄을 이용하는 루트는 탈레반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어 마나스 기지를 이용하는 쪽이 더 안전하고 빠르다”고 분석했다.

미군이 고려하는 새 루트는 흑해를 통해 러시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을 거쳐 아프간 북부에 이르는 수송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은 “러시아와 중앙아 국가들을 경유하는 비군사 물자의 수송이 곧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군으로선 일단 한숨 돌렸지만 변동성 강한 미·러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군사물자까지 수송할 수 있는 보급 루트 확보가 시급한 현안이 됐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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