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 추락 참사]여승무원 이윤지씨,死線 넘나든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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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승무원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른 승객들도 구했어야 되는데…. " 대한항공기 추락사고때 일본 소녀 마쓰다 리카 (11) 양을 구조한 여승무원 李윤지 (24) 씨는 왼쪽 다리만 제외하고 온몸을 붕대로 감은채 악몽같은 사고 순간을 떠올렸다.

올해로 승무원 경력 3년째인 李씨는 당시 기내 서비스중 "곧 공항에 도착한다" 는 기내방송이 나오자 비행기 중간부분에 마련된 승무원 좌석으로 발길을 돌렸다.

좌석으로 돌아가던중 한 40대 남자가 입국카드 작성을 도와달라고 부탁해 대신 써주고 다시 발길을 옮기는 순간 비행기가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李씨는 본능적으로 복도에 엎드린 뒤 의자 받침대를 꽉 잡았으나 비행기가 산등성이와 잇따라 충돌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는 주위가 온통 캄캄한 가운데 곳곳에서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살려달라" 는 신음소리가 간간이 들렸으나 심한 부상과 통증으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때 바로 옆에서 한 소녀가 한국말로 "어머니, 살려주세요" 라고 외쳤다.

리카양이 한국인 어머니로부터 배운 한국말로 구조를 요청한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사력을 다해 소녀 곁으로 기어간 李씨는 "언니 손만 꼭 잡고 있으라" 고 말한 뒤 그녀를 기체 밖으로 밀어냈다.

간신히 기체 밖으로 빠져나온 李씨는 리카양을 비행기로부터 멀리 피신시킨 뒤 다시 비행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순간 '쾅' '쾅'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리카양은 다음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버지와 함께 생명의 은인인 李씨를 찾아가 쾌유를 빌며 감사의 선물을 전달했다.

한편 李씨는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고 오른쪽 팔근육이 파열됐으며 왼쪽 폐와 목에도 손상이 있어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아야 완치될 전망이다.

인천 = 정영진.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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