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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 ‘물 전쟁’… 물 뺏기면 담당 공무원 직위해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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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7일 경남 사천시청 회의실에선 시민사회단체 대표 50여 명이 모여 ‘남강댐 운영 수위 상승 사천시민대책위’를 결성했다. 이들은 남강댐 물을 부산에 공급하는 정부의 방안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채택하고, 사업을 백지화해 달라는 건의문을 청와대·국토해양부에 보내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진주·사천·남해·하동·산청 등 서부 경남 주민 80여만 명의 식수원인 남강댐(진양호) 물의 부산 공급을 둘러싸고 경남도와 부산시 사이에 물 분쟁이 빚어지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남강댐 물을 부산에 공급하는 부산·경남권 광역상수도 사업을 추진키로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댐의 운영 수위(수돗물 공급 조절을 위한 물 높이)를 41m에서 45m로 올려 추가 확보한 물을 100㎞ 관로를 통해 부산에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말 국토부가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이를 뒤늦게 알게 된 경남은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이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해당 국장과 과장을 직위해제할 정도로 단단히 화가 나 있다. 김 지사는 “남강댐은 유역 면적은 넓지만 담수 용량이 부족해 지금도 홍수 때만 되면 제구실을 못해 위험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댐을 그대로 둔 채 운영 수위만 높이는 것은 댐을 ‘물폭탄’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남강댐은 셀마(1987년)·루사(2000년)·매미(2003년) 등 태풍이 덮쳤을 때 상류에서 밀려오는 물을 감당하지 못해 위험에 처했었다.

반면 허남식 부산시장은 “잦은 낙동강 오염 사고로 안전한 식수원 확보를 위해 남강댐 물 공급이 필요하다. 수자원은 국가에서 나라 전체를 보고 관리하는 것인 만큼 결정을 기다리자”며 느긋한 입장이다.

◆곳곳에서 ‘물 전쟁’=시민환경단체인 ‘물포럼 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물 분쟁 사례는 58건이다. 이 분쟁들은 이웃 지역 자치단체들, 정부와 지역, 주민과 공기업, 주민과 사업자 사이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10년 이상 지속되는 곳도 있다. 양질의 물을 먹고 싶은 욕구와 물 부족 사태가 충돌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최근 충남 서천군이 금강 수질 개선을 위해 금강 하굿둑 일부를 철거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전북 군산시가 반발하고 있다. 서천군은 물 순환을 가로막는 금강 하굿둑 총길이 1841m 중 200m를 철거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둑을 터서 12㎞ 상류까지 바닷물이 강으로 들어와 기수역(汽水域·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 복원되면 장어와 황복 등의 양식장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완구 충남도지사는 “금강 살리기의 핵심은 하굿둑을 트는 것”이라며 “충남과 전북이 공동의 이익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산시는 둑을 틀 경우 농업·공업 용수 확보가 어려워지고, 홍수 때 바닷물 유입으로 군산 시내 저지대가 범람될 수 있다며 반발한다. 문동신 군산시장은 “하굿둑은 당초 재난 방지와 농업 및 공업 용수의 확보를 위해 건설된 것”이라며 “본래의 기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수질 개선 방안이 추진돼야지 일방적인 둑 철거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5년째 대립 중인 곳도=강원도 평창의 도암댐 물은 한강수력발전처가 전기를 얻기 위해 백두대간 넘어 발전한 뒤 강릉 남대천 상류로 방류하고 있다. 강릉시민들은 도암댐 물이 남대천 수질을 오염시킨다며 발전방류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며 시위를 벌여 2001년 3월 발전방류가 중단됐다. 도암댐 상류는 축사와 고랭지 밭이 많아 수질이 4, 5급수 수준이다. 한강수력발전처는 시설을 놀릴 수 없다며 발전방류한 뒤 물을 2급수로 정화해 남대천으로 보내는 계획을 최근 다시 추진하면서 마찰을 빚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와 평택시는 2004년부터 5년째 두 지역 3.85㎢에 걸쳐 있는 송탄상수원 보호구역 해제를 놓고 대립 중이다. 용인시는 상수원보호구역을 해제해 공단 조성 등을 통해 지역개발을 꾀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평택시는 상수원에서 취수한 물은 시민 5만여 명이 식수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평택의 비상 급수원이어서 해제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김상진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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