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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열며]어른들이 문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탈리아 말이다.

"산타 마리아!" "마돈나!" "오, 제수!" "산 안토니오!" 이를 번역하면 "성 마리아, 성모여, 오 예수님, 성 안토니오. " 다.

택시 운전사가 시내를 달리다가 골목에서 차가 톡 튀어나와 끼어드니까 안토니오 성인을 부르는 것이었다.

또 가다가 두 사람이 무단으로 앞길을 횡단했다.

깜짝 놀라면서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이번에는 마돈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내가 이탈리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는 때였다.

교황청이 있고 수많은 성인들을 조상으로 갖고 있으며 국민의 99%가 천주교 신자들인 이 나라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그 택시 기사를 보면서 이 나라 사람들은 수시로 이렇게 '화살기도' (짧은 형태의 간단한 기도) 를 바치는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몇년후 이탈리아 어느 성당에서 강론을 하면서 이같은 이야기를 하느라고 택시기사의 흉내를 냈다.

그 흉내를 내는 순간 할머니.여자신자 대다수가 얼굴을 막 찡그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도 너무하다는 표정이었다.

즉시 사과하면서 한국의 종교 실태는 이곳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짧은 강론을 끝내려는 때였다.

즉시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며 한국에서는 욕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이 질문의 풀이가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를 모르고 예수.마리아.성인의 이름을 모르니 어떻게 욕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을 할 때 많은 이들이 웃었다.

이번에는 내가 난처해지고 얼굴을 찡그릴 차례였다.

나는 "개새끼, 개자식, 개같은 놈" 이라고 제단에서 말해 볼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번역을 해보라기에 "피콜로 카녜, 카뇰리오, 스테소카녜" 라고 했더니 앞에 앉아서 신기하게 듣던 꼬마 녀석들이 밝은 표정, 신나는 몸짓으로 박수를 딱 치면서 발딱 일어나 "아이구 예뻐라! 너무 귀여워!" 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어른들도 모두 웃음바다가 됐다.

모두의 표정은 그 말이 어떻게 욕이 될 수 있느냐, 너무나 귀엽기만 한 말이 아니냐고 야단들이었다.

동양과 서양이 이렇게 다르다.

종교국가와 비종교 국가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확실하다.

10대들의 탈선.빨간 마후라.가출이며 출산이며 야단들이다.

이렇게 매스컴을 동원하며 주요기사.인기기사, 무슨 난리가 난듯 어른들이 10대들과 너무나 다르게 판단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10대와 어른들이 따로 살고 있는 사회인가보다.

어른들의 생활현상과 10대들의 생활현상이 너무나 다르다.

10대들의 문제라는 어른들의 판단과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10대들의 생각이 다르다.

정신을 함께 하지 않는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

탈선을 해도 내 자식,빨간 마후라를 보고 놀았어도 내 자식,가출해도 출산해도 내 자식은 내 자식이다.

그런데 법으로 처벌하고 감옥에 집어넣고 사회로부터 잘라버리고 아예 숨도 못쉬게 하려는 못난 어른들의 자세는 아닌지, 10대들의 부모와 이웃인 우리 어른들이 어쩌자는 것인지 한심스럽다.

우리 10대를 우리 어른들이 보살펴 되살려줄 자세로 끌어안을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모들도 고칠건 과감히 고치고 사과할 것은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

왜 우리는 귀여운 우리 10대들을 욕하고만 있는지 한심하다.

아니 어른들은 이렇게까지 잔인하고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런 무서운 어른들이 득실거리는 판에 우리 10대들이 끼어 살려니 참으로 어려움이 대단할 것같다.

이혼율 증가, 낙태살인, 어른들이 드나드는 거리의 향락업소들, 뇌물, 부정, 욕지거리에 쌍소리를 빼면 말못하는 술취한 어른들, 돈 욕심에 눈이 벌건 상혼들, 백화점 세일광고의 선정적으로 벗은 여자 모델등 이런 어른들을 먼저 법으로 처단하고 제거하지 않는한 10대를 나무랄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생각이다.

자라나는 10대가 아니라 자라난 10대들이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라났다.

다만 경험적으로 자라나는 10대들이다.

받아들일만한 미지의 경험세계들이 매력적이도록 고쳐봐야겠다.

李基精답십리성당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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