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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문화① 武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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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황비홍(黃飛鴻)’을 본 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리롄제(李連杰)가 화려한 무술 실력을 뽐내는 장면, 그리고 침탈당한 중국의 설움을 백인과의 싸움을 통해 털어버리려는 내용에 공감했던 사람도 많다. 어디 황비홍뿐인가. 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정무문(精武門)’ ‘당산대형(唐山大兄)’의 리샤오룽(李小龍)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스타로 꼽힌다. 외팔이 왕위(王羽)가 무협영화에 등장해 보여주는 귀신같은 칼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도 있다. 80년대에는 청룽(成龍)과 훙진바오(洪金寶) 등이 무술 스타의 명맥을 이었다.

영화는 유행을 만들었다. 그들을 따라 중국 무술을 배우려는 붐도 일었다. 한국에도 국기인 태권도가 있다고는 하지만 형식의 다양성과 화려함에는 중국 쿵후에 견줄 바가 되지 못한다.영화 ‘황비홍’의 실제 주인공은 1847년에 태어난 황시양(黃錫洋)이다. 그는 지금의 중국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에서 태어나 실제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무술을 익혔던 인물이다.

그가 운영했던 무관(武館)은 다시 복원됐다. 그곳에는 그가 생전에 운영했던 무관과 약방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그러나 더 주목할 게 있다. 기록에 따르면 황비홍이 살던 당시의 그 고향집 거리는 각종 무술을 연마하는 무관들이 성업 중이었다.
뭔가 남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익히는 게 무술이다. 150여 년 전의 광둥성 포산에 그만큼 많은 무관이 존재했다는 것은 중국인 스스로 무술을 익혀야 하는 어떤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해도 무방하지 않다.

오늘의 중국은 어떨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결코 다르지 않다. 중국 텔레비전을 시청하다 보면 ‘무술학교’를 알리는 광고를 자주 접한다. 일반인들이 여가를 위해 다니는 그런 학교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정규 교육과정과 함께 본격적으로 무술을 익히는 학교다. 지역별로 차려진 무술학교들은 오늘도 열심히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얼추 잡자면 요즘 중국 전역에서 1만 개가 넘는 무술학교가 성업 중이다.

한국에 잘 알려진 소림사는 말 그대로 무술학교의 본좌다. 소림사 본찰 앞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무술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 푸른 눈의 외국 학생들도 열심히 이곳을 드나들며 중국 무술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인들이 조바심을 낼 정도로 무예를 익혔다면 그 안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게다. 영화 ‘황비홍’과 멋진 폼의 리샤오룽 무술을 보면서 사실 우리는 이런 곡절과 이유를 찾는 데 시간을 좀 쏟아야 했다. 중국을 좀 더 이해하고 싶었으면 말이다.

중국 무술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데는 까닭이 있다. 중국은 싸움이 잦았던 사회다. 싸움이 늘 반복되는 현장에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그 무엇이 절실했던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외국인은 흔히 중국을 이야기하면서 안정된 통일왕조의 이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진(秦)·한(漢)·수(隋)·당(唐)…. 베이징(北京)의 고색창연한 황궁과 함께 중국은 이런 통일 역사 왕조의 이미지와 함께 그려진다.

그러나 통일 왕조의 통치 기간, 아니면 그 왕조가 교체되는 시점 등에서의 중국에는 수많은 싸움이 있었다. 왕조로부터의 수탈도 많았다. 북방 유목민의 침입에 따라 북부 인구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생겨나는 자체적인 충돌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게다가 흉년이 들어 많은 중국인이 순식간에 도적으로 변하면 그렇지 못한 중국인들은 이들로부터의 침탈을 막기 위해 절치부심해야 했다.

현대사의 한 통계에 따르자면 1912년부터 32년까지 20년 동안 중국 서남부 쓰촨(四川)에서 벌어진 전투는 470여 회에 달한다. 사람이 극복할 수 없는 대형 재난이 늘 이어지는 대륙의 땅에서 전투와 싸움이 빈발했다면 이는 사람이 살아가기 보통 어려운 곳이 아니었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중국의 인문적 환경은 이렇게 싸움이 늘 벌어졌던 곳이다. 그곳에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자연스레 무예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오늘날 보이는 치열한 비즈니스 전쟁, 출혈을 감수하면서 한 푼이라도 건지기 위한 경쟁 등은 이런 인문적 뿌리에 닿아 있다. 영화 ‘황비홍’ 안에는 이런 곡절이 숨어 있다. 그 배후를 짐작해 보는 일이 중국을 이해하는 첫걸음일지 모른다.



중앙일보 국제부· 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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