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거처는 춘천 시내에서 차로 30분은 더 가야 하는 산골에 자리 잡고 있다. ‘간첩 잡아 애국하고 유신으로 번영하자’는 구호가 적힌 1970년대 비석이 남아 있을 만큼 시간조차 비켜간 오지다.
이후 두 달 뒤 춘천 외곽의 대룡산(大龍山) 아래 거두리(擧頭里·큰 용이 머리를 들고 있는 모양이라고 해 붙여진 이름)의 한 농가에 들어가 6개월째 칩거해 왔다.
그런 손 전 대표가 지난 9일 빈민활동 동지였던 고 제정구 전 의원의 추모행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나는 유배 중이며 자숙의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회에서 손학규가 필요한 사람인지 다시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둘러싸고 떠돌던 4·29 재·보선 출마설은 쑥 들어갔다.
손 전 대표는 요즘 자신을 찾아오는 지인들에게도 “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언제’보다는 ‘어떻게’돌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위기지학(爲己之學)”이란 말도 자주 쓴다. 논어의 ‘고지학자위기(古之學者爲己), 금지학자위인(今之學者爲人)’의 압축어로 ‘학문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수양을 위해 하는 것’이란 뜻이다.
손 전 대표의 ‘산중모색’이 길어지는 건 불투명한 상황과도 관계 있다. 당 대표 시절 어렵사리 모았던 ‘손학규계’는 벌써 당내에 흔적을 찾기 어렵다. “더 이상 그를 위한 공간이 없다”(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라이벌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처럼 외곽조직이 탄탄하지도 못하다. 보건복지부 장관·경기도지사 시절 쌓은 ‘유능’ 이미지도 한나라당 탈당과 민주당 대표를 거치며 많이 희석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손 전 대표는 “조직이나 이미지 챙기기보다는 ‘통합’을 화두로 가치와 비전을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이에 따라 그의 칩거는 최소한 몇 개월 더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훈식 지역위원장(충남 아산)은 “손 전 대표는 자신을 향한 비판과 정치 여건을 정확히 알고 있다”며 “자신을 따른 이들을 챙기기 앞서 손학규만의 가치를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대룡산을 오르내리고 독서로 소일하며 구상을 메모하는 게 일과였던 그였지만 요즘엔 눈에 띄지 않게 세상과의 소통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매일 아침 차로 왕복 40분 거리인 춘천 시내에 나가 사오는 3~4부의 신문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연설문과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탐독하고 있다. 설 연휴 직전엔 지역구인 서울 종로의 재래시장 상인들과 만났고 지난 13일엔 강원도 태백의 가뭄 현장을 찾았다.
임장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