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학원과외 추방 ‘미완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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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서울의 덕성여중처럼 ‘학원과외 추방 실험’이 벌어졌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중구 남외동 남외초등학교에서 김연득 교장의 주도로 시행된 ‘학력향상 담임 책임반’(이하 담임책임반)제도. ‘학생이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될만큼 담임이 책임지고 가르치는 학급’이란 의미라고 한다. 학력뿐 아니라 인성교육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재정·업무상 부담이란 한계를 못이겨 한 학기만에 사라졌다.

13일 남외초등학교 한 교실에서 김연득 교장이 방과후 수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 교장은 “지난해 1학기 때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를 위해 실시했던 ‘담임 책임반’ 제도가 호응을 얻었다” 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실험=“2000가구가 넘는 아파트에 둘러쌓인 학교인데도 수업만 끝나면 운동장에 아이 하나 볼 수 없었어요. 전교생 13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더니 1인당 평균 3개 학원에 다니며 월 34만원의 과외비를 지출한다더군요. 심지어 1학년인데 9개 과목을 듣는 학생도 있었고요. ”

2006년 이 학교에 부임한 김 교장은 2년간의 고민끝에 3~6학년이 될 학생 900여명의 집에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반 편성을 앞둔 지난해 2월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생들이 모두 학원에 가버려 가르치고 싶어도 방법이 없습니다. 젊고 유능한 선생님이 책임지고 가르치는 ‘담임 책임반’에 자녀의 배정을 신청해주세요. 단 학원에 보내야하는 학생은 사절입니다.”

김 교장은 이에 앞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담임 책임반’을 맡을 지원자를 받았다. “방과후 2시간 동안 더 가르쳐라. 수당은 없고, 대신 잡무에서 제외시켜준다. 교과학습이든 특별활동이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소신껏 하면 된다.”

신청을 받은 결과 137명의 학생과 4명의 교사가 지원, 각 학년 2반을 담임책임반으로 편성됐다.

3학년 2반을 맡은 이지현(26)교사는 “교장이 ‘교대 다닐 때 그렸던 교사로서의 꿈을 펼쳐봐라’는데 반해 고생을 각오하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정규수업이 끝나는 오후 2시20분~4시 교과보충(수학·국어 등)과 특별활동(배드민턴·음악줄넘기) 시간을 운영했다. 부모의 요청에 따른 개별보충지도, M 2010(아침 20분 독서, 10분 한자공부)도 실시했다.

◆성과는 좋았지만=3학년 2반의 경우 학기초(3월) 실시한 진단평가시험 때는 학년전체 평균(27.5점)보다 0.1점 뒤졌다. 그러나 6월말 실시한 기말고사 때는 학년평균(78.2점)보다 오히려 1.1점 앞선 79.3점을 받았다. 4~6학년 2반도 학년 전체평균보다 진단평가에서는 0.1~0.2점 뒤졌으나 기말고사 때는 모두 0.3~1.5점 앞질렀다.

이지현 교사는 “학원을 끊고도 학력을 올릴 수 있다는 건 보여준 셈”이라며 “하지만 살벌한 학원 분위기를 잊고 사제간·동료친구간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늘면서 친밀감·유대감·사회성이 몰라보게 좋아진 점이 더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세훈(10)군의 어머니 최경화(40)씨는 “아이한테 부족한 것, 원하는 것을 담임이 학원보다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채워주더라. 학원 강박관념에서 벗어났다”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남외초등의 실험은 재정적인 한계를 극복 못해 단 한 학기만에 중단됐다. 김연득 교장은 “담임책임반을 확대하려면 잡무를 맡아줄 인력을 따로 고용해야 하고, 교사들에게도 수당도 못주면서 사명감만으로 2시간 이상의 추가수업을 요구하기가 민망하다”고 말했다. 서울 덕성여중의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에 못지않은 좋은 제도이지만 운영할 재원도 없이 교사로서의 사명감만 강조해서 끌고 가기엔 무리였다는 얘기다.

이기원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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