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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OW 게임 용어 한글로 바꾼 게 저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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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4년 전 블리자드의 온라인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가 한국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 많은 이가 깜짝 놀랐다. 음성을 한국말로 더빙한 것은 물론 게임 용어까지 모두 한글로 바꾼 것이다.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비롯된 서양식 롤플레잉게임(RPG)에서 빠짐없이 쓰이는 ‘파이어볼’이니 ‘체인라이트닝’ 같은 마법 이름까지 ‘화염구’ ‘연쇄번개’ 등으로 고쳐 놨을 정도였다.

처음엔 낯선 용어에 거부감을 느끼던 이들도 점차 한국식 명칭에 익숙해졌다. 블리자드의 한글화 노력에는 숨은 인물이 있었다. “현지 시장은 현지 문화를 가장 잘 아는 현지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한정원(사진) 블리자드코리아 대표의 지론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한국지사 직원 300명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한 대표는 직접 더빙 작업에 참여해 얼라이언스 마을에 있는 나무꾼 캐릭터 음성에 자신의 육성을 넣기도 했다. 한국 시장에서 WOW가 제대로 자리 잡자 미국 블리자드 본사는 한 대표에게 한국법인의 마케팅·홍보·영업·인사 전권을 줬다.

이처럼 현지화를 강조해 온 한 대표가 지난해 말 블리자드의 대만·홍콩·마카오 법인을 총괄하는 북아시아본부 대표로 승진했다. 15년간 한국 게임시장에서만 활약한 점을 볼 때 흥미로운 인사다. 그는 “현지화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해 해당 국가에 한국인 관리자를 내보낼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다만 한국지사 인력 중에서 능력과 적성에 맞는 자리가 나면 적극적으로 국가 간 인력을 교류하겠다고 했다. 한 대표는 “WOW의 한글화 작업에 만족한 블리자드는 당시 담당 직원들을 본사로 불러 세계 각국에서의 현지화 작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겼다”고 전했다. 지금도 본사 직원 몇몇이 한국지사에 파견 나와 한국이 왜 온라인게임 세계 최대 강국이 됐는지를 공부하고 있다.

1994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한 대표는 2년간 P&G에서 일하다 LG소프트로 옮겼다. 평소 관심 있던 게임 쪽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국내에 소개한 게임으로, 국내에서만 450만 장이 팔린 블리자드 ‘스타크래프트’가 있다. EA코리아로 옮겨 심즈, 피파 시리즈, 커맨드앤컨커, 울티마온라인 같은 인기 게임을 들여오기도 했다. 그러다 2002년 블리자드의 모기업인 비벤디유니버설게임즈(현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한국본부장을 거쳐 2004년 출범한 블리자드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그는 회사 내 직함을 없애고 호칭을 ‘OOO님’으로 통일할 정도로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강조한다. 전 세계에서 1100만 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할 정도로 성공한 WOW지만 지금도 한국에서 새 서버를 열 때면 손수 캐릭터를 만들어 게임을 한다. 사용자 입장이 돼야 문제점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란다.

“직원 8명 정도가 모여 게임을 하는데 매주 월요일 아침에 레벨을 공개해 가장 낮은 사람이 점심을 사요. 일요일 새벽이면 눈치작전이 치열합니다.”(웃음)

최근 WOW의 지연현상(서버랙)을 잘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고민”이라는 말도 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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