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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바꿔도 뿌리만은 … 명차들의 소문난 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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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양산을 시작한 폴크스바겐의 비틀에 이런 반응이 잇따랐다. 엔진을 차의 뒤쪽에 얹었기 때문이다. 비틀을 근간으로 한 포르셰의 스포츠카 911은 지금도 이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포르셰 911은 1963년 데뷔한 이래 한결같이 엔진을 뒤에 얹었다.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쏠렸으니 몸놀림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포르셰 911은 스포츠카의 왕좌를 놓치지 않았다. 포르셰는 여전히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 이 방식은 911만의 개성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개성있는 디자인을 지켜온 명차들. 사진 상단부터 폴크스바겐 뉴비틀, 포르셰 911, BMW 미니.

자동차 브랜드 중에는 이처럼 유별난 개성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브랜드의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포르셰의 시동키 위치도 대표적인 예다. 포르셰는 열쇠를 운전대 왼편에 꽂는다. 과거 자동차 경주 때 왼손으로 열쇠를 꽂고 오른손으로 기어를 넣으면 기록을 10분의 1초 남짓 줄일 수 있었다. 그 때 만들던 ‘전통’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시동키 위치가 독특하기로는 사브도 만만치 않다. 사브는 자동차 열쇠를 운전석과 동반석 사이인 기어 스틱 뒤에 꽂도록 돼 있다. 운전대 옆에 열쇠를 꽂으면 사고가 났을 때 손목을 다칠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다. 안전성을 자랑하는 다른 많은 자동차 브랜드도 모두 운전대 옆에 시동키를 둔다. 그러나 사브는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고유 디자인을 꿋꿋하게 지키는 경우도 있다. 63년 처음 선보인 포르셰 911이나 요즘 팔리는 911이나 옆모습 윤곽은 그 모습 그대로다. 비틀의 바통을 이어받아 부활한 뉴비틀도 마찬가지다. 뉴비틀로 거듭나면서 엔진은 물론 굴림 방식도 앞바퀴 굴림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앞뒤 대칭의 앙증맞은 디자인만은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영국의 로버에서 태어나 BMW의 품에서 부활한 미니도 그렇다. 반세기 전 선보인 원조 미니나 오늘날의 뉴미니나 분위기만큼은 판박이다. 귀여운 눈망울과 활짝 웃는 듯한 그릴, 네 바퀴를 차체 모서리로 바짝 밀어낸 디자인이 원조 미니를 빼닮았다. 단단하고 야무진 주행감각도 변함없다.

BMW는 콩팥처럼 생긴 라디에이터 그릴을 고집하고 있다. 일명 ‘키드니(공팥) 그릴’이다. 고급 세단엔 크고 웅장하게, 스포츠카엔 납작하고 날렵하게 변주를 줄지언정 BMW 모든 모델의 얼굴엔 키드니 그릴이 박혀 있다. 이 그릴은 독일 바이에른주의 하늘과 구름, 그리고 항공기의 프로펠러를 형상화한 엠블럼과 함께 BMW 브랜드를 상징하는 징표가 됐다.

오랜 고집을 꺾었다가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경우도 적지 않다. 롤스로이스는 BMW에 인수된 뒤 새로 선보인 ‘팬텀’ 모델에 경첩이 뒤쪽에 달린 뒷문을 달았다. 앞으로 오므렸던 날개를 펼치듯 열린다. 이렇게 하려면 문을 열기 위해 꽤 넉넉한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 대신 승객이 타고 내리기에는 훨씬 편하다. 초창기 롤스로이스의 고풍스러운 문이 세월의 더께를 털고 부활한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고집을 꺾은 경우도 있다. BMW는 자연흡기 엔진을 고집해 왔다. 반응이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워 운전이 즐겁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BMW는 최근 적은 배기량으로도 큰 힘을 낼 수 있는 터보차저(엔진에 강제로 공기를 압축해 불어넣는 장치)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연비와 출력을 높이는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낮추기 위해서다.

볼보는 오랜 세월 뒷바퀴 굴림 방식 세단을 고집하다 1990년대 중반 돌연 앞바퀴 굴림으로 돌아섰다. 공간효율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아우디가 자랑하는 네바퀴굴림 시스템 ‘콰트로’는 앞뒤 구동력을 정확히 50대50으로 나눴다가 이젠 뒷바퀴에 더 많은 힘을 싣고 있다. 뒷바퀴 굴림 방식 특유의 운전 재미를 살리기 위해서다.

김기범 월간 스트라다 기자 cuty74@istrad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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