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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주먹구구 서울시 버스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지난 2주간 서울시 기자실에는 5백~7백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배포됐다.

서울시가 '제대로된 시민의 발' 을 만들겠다며 마련한 버스개혁종합대책을 담은 자료들이었다.

40~50년 해묵은 과제인 버스노선 개편에서부터 도산직전의 버스업체들을 위한 지원방안, 합리적인 요금체계의 개편, 선진국 수준의 서비스 개선안등 가위 버스대책 '백화점' 이라할 만큼 온갖 정책들이 총망라돼 있었다.

게다가 앞서가는 외국사례까지 수록하고 있어 자료를 읽어가는 기자에게 '이제 우리도 선진국 수준의 버스를 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같은 꿈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단지 장미빛 '희망사항' 에 그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어 안타까움을 떨치기 어렵다.

지역순환버스 요금을 80원 내리겠다고 했다가 업자들의 반발에 직면하자 30원 인하로 후퇴한 일만 해도 그렇다.

시는 이번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요금결정 원칙을 세우겠다며 온갖 대책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지역순환버스 요금문제를 보면 발표안과 당장 시행하는 정책이 '따로국밥' 임을 대번 알 수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요금을 정해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니 업자들이 주장하면 그 논리에 굴복할 수 밖에 없고 정책이 조변석개 (朝變夕改)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버스카드 요금 할인율을 2006년까지 50%로 한다는 발표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장미빛 청사진으로 실현성에 의문이 앞선다.

당장 올 연말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버스카드와 신용카드의 지하철.버스 호환 (互換) 제 실시때 적용해야할 카드요금 할인율 조차 카드발급회사와 아직까지 단 한마디의 논의도 하지 않은 서울시가 앞으로 9년후의 청사진까지 입담좋게 펼쳐보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번에도 카드회사가 할인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면 다시 정책을 바꾸고 말것인가 되묻지 않을수 없다.

시민들은 화려한 청사진을 보고 싶어하는게 아니다.

더이상 버스정책이 갈팡질팡 시민들에게 현기증을 안겨서는 안된다.

필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과 실현성임을 서울시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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