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지도]59. 앵포르멜 - 국전 60년대 들어 추상작품 받아 (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50년대는 국전속에 한국 화단이 존재하는 것같은 착각을 자아낼 정도로 국전 세력이 컸다.

하지만 56년 4인전의 반 (反) 국전 선언이 나온뒤 이듬해부터 한국 최초로 앵포르멜이라는 새로운 조형이념을 내세운 현대미협이 등장하고 그뒤를 이어 추상미술단체들이 잇달아 발족하면서 국전은 내용상 빈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국전을 표면에 내세우고 기성의 구상미술에 도전하는 앵포르멜의 흐름이 점차 거세지자 58년에는 국전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아카데미즘 계열 작가들이 목우회 (木友會) 를 만들어 재정비를 꾀했다.

50년대 말까지 광복 이전 세대에 휘둘려 비슷비슷한 아카데미즘 미술만 선보였던 국전은 60년대 들어서 추상작품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추상미술은 미술도 아니다' 라며 추상미술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기성화단에 남아있기는 했지만 시대의 흐름은 앵포르멜, 즉 추상미술로 옮겨가고 있었다.

60년대 초반은 구상과 추상이 심한 대립을 보였다.

재야세력인 추상미술이 급격히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국전을 발판으로 활동해온 구상계열의 견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미술대학 출신의 신진작가들이 대부분 추상을 시도하는등 점차 추상계열이 화단의 중심적인 세력으로 부상했다.

68년에 이르면 추상을 수용해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누어 국전을 실시하게 됐다.

그리고 70년대로 가면 박길웅 (朴吉雄).강정완 (姜正浣).유희영 (柳熙永) 등 비구상 계열이 국전 최고상인 대통령상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