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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칼럼] 정치권의 빅뱅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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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때 몇몇 인터넷 전자신문들은 모의투표를 실시했었다.

각당이나 후보들, 그리고 언론기관들이 수십차례 실시한 여론조사와는 성향이 조금 다르게 나와 흥미로웠다.

당내에서 유세가 진행되는 동안 이회창 (李會昌) 후보가 거의 독주하다시피 했던데 비해 인터넷 모의투표에서는 이인제 (李仁濟) 후보가 압도적이었다.

그는 40%대를 넘어서 다른 후보를 거의 배로 앞지르는 기세를 보였다.

물론 전자신문에 접속하는 계층이 주로 10~30대고 개중에는 투표권이 없는 10대나 또는 투표장에 나갈 의사들이 거의 없는 (왜냐하면 20대의 투표율은 40~50대보다 20%이상 낮으므로) 젊은층도 많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인터넷으로 투표한다면 이인제후보는 압승을 거둘 판이었다.

이런 성향을 다만 젊은층에 편향된 정치의식으로 치부해버릴 것인가.

이인제후보는 당내에서도 한때 돌풍을 일으키다가 막판에는 기존조직의 벽에 부닥쳐 무너졌지만 그에 대한 당내 인기와 당외의 기대감이 상당히 높았다는 점은 주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3金정치로 대표되는 구 (舊) 정치, 느닷없는 박정희 (朴正熙) 신드롬, 그리고 개혁을 내세우면서 속으로 썩어버린 '위장개혁' 에 대한 반발이며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라고 해석한다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그가 당내 경선에서 실패한 것은 어쩌면 이와 같은 구정치와 복고적 기성정치권에 대한 반 (反) 정치의 좌절이며, 젊은 계층의 정치적 도전의 좌절이기도 하다.

그것이 오늘날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불신의 근거이기도 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가장 본질적인 과제는 단순한 정치적 세대교체나 권력이동이 아니라 정치적 변화의 요구를 흡수할 새로운 정치틀을 형성하고 이를 추진할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정치의 빅뱅이어야 한다고 믿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정해진 金씨들을 뽑은 야당보다 여당의 경선과정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신문들은 이회창 (李會昌) 후보를 '미스터 클린' 이나 '경골한 (硬骨漢)' 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대쪽' 이라는 말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어 청렴 쪽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강직성 어느 한쪽으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그의 정치적 이미지는 이와 같은 원칙성과 도덕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가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타협적인 발언을 하거나 경선과정에서 자금을 살포한 혐의를 받았을 때 지지도가 흔들리거나, 아들의 병역 (兵役) 문제가 지나치게 클로즈업되는 것도 그탓으로 보인다.

지금 국민들은 여러 가지 속임수 정치에 대해, 고황 (膏황)에 이른 부패라는 질병에 대해 근본적인 처방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회창후보가 직면한 가장 절실한 과제는 당내의 이상기류나 당외의 보수연대 같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혁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과감한 정치적 물갈이라고 보여진다.

그는 경선과정에서 많은 부담을 졌을 것이다.

킹메이커도 있을 것이고, 이 (利) 를 쫓고 세를 따라 몰려든 정치적 철새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선의 세몰이가 가능했던 것은 대표로서의 권위 때문만도 아니고, 정치적 지략으로서만 가능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법대로' 라는 원칙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 진짜 개혁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혼자 칼국수를 먹으면서 주변의 비리를 방치하는 위장개혁,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 하다가 이름만 망친 허구의 개혁이 아닌 '원칙의 개혁' 을 요구하는 기대감인 것이다.

이와 같은 국민적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의 신세력을 끌어들여서라도 신개혁주체를 만드는 작업이 정치권의 재편성이라는 차원에서 구상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3당합당 후 가장 빠르게 부패 속으로 빠져든 구야당 세력, 군부정치의 부패를 함께 누린 세력들은 그런 개혁의 핵심에서 배제되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엉뚱한 지역맹주론자도 제외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 부패세력들이 산업화세력이니, 테크노크라트니 해서 합리화될 수는 없다.

만약 그런 구도가 대선승리라는 정략적인 이유 앞에서 좌절된다면 한국정치에 대한 변화의 욕구를 외면하는 결과를 빚는 것이며, 구세력의 회귀나 새로운 세력의 등장이라는 틈새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김영배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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