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실제 작전과 절반 같고 절반 다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식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개봉된다는 소식에 주식 좀 한다는 사람들은 귀가 솔깃하다. 영화처럼 드라마틱 하지는 않지만 산전수전 겪었다는 실제 작전세력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궁금하다고 관심을 나타냈다. 영화와 실제 작전은 어디가 비슷하고 다른가?

관련사진

영화 ‘작전’의 한 장면.

카메라는 서울 강남의 한 룸살롱을 보여준다. 묘한 조합의 세 사내가 술을 벌컥벌컥 마시고 있다. 한 명은 잘나가는 증권 브로커 조민형(김무열 분)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재미교포 펀드매니저 브라이언 최(김준성 분)다. 개미투자자 강현수(박용하 분)의 취기 오른 모습도 보인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대주주 포섭 등 설계는 비슷 … 철저한 비밀주의는 못 그려” #주식작전 소재 영화 ‘작전’에 명동 관심

조민형이 양주를 가득 부은 큰 잔을 브라이언 최에게 넘기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 주식을 넘기면?” 브라이언 최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이번엔 얼음통에 양주를 담아 강현수에게 전한다. 그리고 내뱉는 한마디. “내가 그걸 더 비싸게 만들어 다시 넘기지.” 이른바 ‘얼음통 양주’를 완샷한 강현수가 비틀거리자 조민형이 “그런 걸 두고 통정거래라고 한다”며 조롱 섞인 웃음을 던진다.

대체 세 사람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작전세력’이다. 주식정보를 절묘하게 이용해 주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장본인들이다. 지금 이들은 ‘작전 상황’을 개미투자자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는 2월 12일 개봉되는 영화 ‘작전(감독 이호재)’의 한 장면이다.

국내 영화로는 처음으로 ‘작전세력’을 소재로 한 덕분인지 명동과 여의도 일대에서 화제다. 영화 ‘작전’에선 명칭답게 작전세력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는 작전주를 샀던 개미투자자 강현수가 우여곡절 끝에 진짜 작전세력에 포섭돼 600억원 규모 작전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두뇌싸움을 그렸다.

“차트 보고 작전주 알면 다 부자 되게?”

작전팀원은 오랜 조폭 생활을 청산하고 DGS홀딩스를 차려 주식작전 세계에 뛰어든 독가스파 두목 황종구(박희순), 능력 없는 2세 경영인, 비자금을 축적한 정치인의 자산뿐만 아니라 비밀까지 철저하게 관리해 준다는 PB 유서연(김민정 분), 서진에셋의 특급 에이스이자 작전 설계자로 명성이 높은 펀드매니저 조민형(김무열 분)이다. 목표 차익은 600억원.

이들은 껍데기뿐인 부실 건설회사 대산토건 CEO와 짜고 ‘수질 개선 박테리아 연구’를 하는 ‘한결 벤처’와의 합병을 재료로 쓴다. 여기에 족집게로 유명한 증권방송의 애널리스트가 여론 몰이를 맡고 검은 머리 외국인 브라이언 최가 외국 자본으로 둔갑해 참여한다. 멋모르고 작전주를 샀다가 진짜 ‘작전세력’이 되는 개미투자자 강현수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조폭·펀드매니저·재벌2세가 짜고 벌이는 ‘목표 차익 600억원 프로젝트’는 제법 실감나게 묘사되고 있다.

작전세력은 실제 속칭 ‘설계’를 하는 과정에서 재벌2세를 포섭하고, 펀드매니저의 정보를 은밀하게 빼돌리기도 한다. 대주주 외에도 브로커 역할을 하는 증권사 직원, 매도를 도와주는 펀드매니저, 바람잡이로 나서는 애널리스트가 공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영화 작전과 실제 작전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이 영화의 주인공 개미투자자 강현수는 일, 주, 월봉 차트를 연구해 작전주를 찜한 뒤 소문을 내는 방식으로 시세차익을 거둔다. 이는 약간은 과장된 내용이다. 차트 분석만으로 작전주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차트를 보고 주식을 샀다가 작전에 걸려드는 사례가 더욱 많다. 작전세력 A씨는 “차트 분석만으로 작전여부를 알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주 있으면 성공률 높은 것은 사실”

작전세력 B씨도 “기본적으로 어떤 주식이 작전주인지는 각 창구와 계좌에서 매매되는 형태를 보면 파악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해당 정보에 접근하는 것도, 그것이 작전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영화에서처럼 대주주가 실제로 작전에 동참하는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작전세력 A씨는 “당연하다”고 했다.

또 다른 작전세력 B씨도 “대주주가 없으면 내부정보를 얻기 어렵다”며 “대주주는 작전의 주요 인물”이라고 귀띔했다. 작전세력이 노리는 종목은 대부분 일반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중소형주다. 10명 내외로 구성되는 게 보통인 작전세력의 자금으론 대형주의 시세조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들이 손쉽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자본금 500억원 이하의 소형주를 목표로 하는 이유다.

작전세력들이 중소형주가 모여 있는 코스닥 시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작전에 돌입하면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대주주를 포섭한다. 이들은 작전 막판까지 시의적절한 재료와 호재, 악재성 정보를 시장에 주입하며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대주주가 필요한 진짜 이유는 또 있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데 대주주의 입장 표명처럼 큰 호재는 없다. 가령 C회사가 D회사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있을 때, C회사 대주주가 직접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면 주가는 삽시간에 급등하기 일쑤다. 대주주 입장에서도 작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불법이라는 점만 눈감으면 막대한 시세차익은 물론 웃돈까지 얻을 수 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때론 주가부양을 통해 기업 자금난을 해소했다는 그럴싸한 명분도 쌓을 수 있다. 다만 이 영화에선 작전세력을 압박하는 조폭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실과 거리가 꽤 먼 이야기다. 실제로 ‘차익 600억원짜리 작전이 존재하는지’도 궁금한 대목. 작전세력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작전세력 A씨는 “작전은 딱히 금액을 정하고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최소 마지노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기간 최대한 차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규모가 크면 클수록 좋다”고 말했다. 작전세력 B씨도 “작전세력으로 피해보는 금액이 수백억원, 때론 수천억원대에 이르기도 한다”며 “600억원 시세차익 작전은 실제 많이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TIP

전직 채권 펀드매니저 ‘김준성’ 연기 볼 만하네

영화 ‘작전’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하는 배우가 있다. 재미교포 펀드매니저 ‘브라이언 최’로 분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이 배우의 이름은 김준성. 김씨는 실제로 억대 연봉의 펀드매니저였다.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학 철학과 출신인 김씨는 부전공이던 경제학을 살렸다.

김씨는 1998년 푸르덴셜증권에 입사해 1999년까지 홍콩지사에서 채권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이후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ABN암로 한국지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김준성은 극중 600억원짜리 작전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주소만 외국에 두고 실제 운영은 한국에서 하는 가짜 외국계 자본을 움직인다. 그가 주식을 사면 개미들은 ‘외국인도 샀다’고 착각하고 몰려든다. 작전 설계자인 증권 브로커와 주식을 고가에 사고팔아 주가를 크게 띄우는 통정거래의 한 축이다.

김준성은 극중에서 역할에 충실한 명품족으로 나온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주변 사람은 무시하고 영어로 얘기하고 술에 취하면 곧장 영어 욕이 나온다. 다소 과장됐지만 우리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다. 김준성씨는 촬영현장에서 유일한 금융권 출신으로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본인도 “증권계는 누구보다 잘 아는 세계이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촬영했다”고 밝혔다. 매니저 조정수씨는 “김준성씨가 지금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다”며 “홍콩에서 근무하는 등 굉장히 유능한 펀드매니저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정연 기자 jayhan@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