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로벌포커스] 4자회담의 好機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평양을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서울과 평양이 같은 하늘을 이고 같은 시대에 존재하는 도시 같지가 않다.

서울은 사람과 자동차와 소음과 욕망과 배기가스와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다.

외형적으로는 새로운 고층빌딩의 등장으로 나날이 구각 (舊殼) 을 벗고 있다.

평양은 사람도 드물고 자동차도 드물고 사람들은 기운이 없고 시끄럽지도 않다고 한다.

퇴락해가는 도시의 모습이다.

산야 (山野) 는 황량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레이니 전한국주재 미국대사가 북한을 떠나 한국의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기는 에덴동산 같더라는 표현을 했을까. 북한이 당면한 경제위기와 식량난은 이제 더 이상 확인과 설명이 필요없다.

가장 최근에 레이니 전대사일행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재미 (在美) 변호사 김석한씨에 의하면 그들을 맞은 북한사람들은 공항영접에서 공항배웅때까지 제발 식량 1백만을 지원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북한의 어려움은 흥청망청 포식하며 사는 남한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 ) 세계적인 동정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인도적인 배려에서 먹을 것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지원으로 북한의 식량난이 해결될리 없고 더구나 경제위기 자체의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레이니 전대사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고, 대부분의 북한문제 전문가들이 동의하는대로 북한이 지금의 난국을 이겨내고 체제를 유지하는 길은 개혁뿐이다.

그러나 북한은 개혁은 곧 체제의 변화 - 지금 체제의 포기를 의미하는걸로 금기시 (禁忌視) 한다.

그래서 북한 지도층이 외국인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는 충고는 중국같이 정치체제를 그대로 두고도 경제는 시장화 (市場化) 쪽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도 그걸 모를리 없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북한은 중국에 많은 시찰단을 보내 농업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언젠가는 시장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들이 개혁에 착수할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그들도 모를 것 같다.

그들이 걱정하는대로 경제개혁은 전체주의적인 정치체제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레이니 전대사는 그들에게 고무적인 암시를 던졌다.

그들이 일단 개혁에 흥미를 가지면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금융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길을 가르쳐준 것이다.

지금 북한은 두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

체면 벗어던지고 사정이 어려우니 식량 좀 보내달라고 사방에 손을 내밀고 4자회담을 여는데도 일단은 동의한 것이 북한의 부드러운 얼굴이다.

그러면서 기회 있으면 한국에 대해 도발행위를 하고 한국과 일본의 특정 언론사를 협박해 공포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북한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북한은 그들이 어떤 비합리적인 행동을 해도 한국이나 미국의 대응은 반드시 합리적일 것이라고 계산한다.

그러나 평양의 지도층은 그들이 이쪽의 이성 (理性) 과 합리주의를 그렇게 이용하면 할수록 한국과 미국정부의 북한지원은 정치적으로 더욱 부담스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두개의 얼굴중에서 험상궂은 쪽을 거두어들이기에 적절한 기회가 4자회담이다.

북한외교부 부부장 강석주가 레이니 일행에게 솔직하게 말한대로 4자회담에서는 북한지원이 논의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협상입장이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4자회담은 제로 섬 게임의 자리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은 이 점을 북한에 확신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더 악화되고 체제가 흔들리면 통일의 기회보다 혼란이 먼저 올 것이다.

통일보다는 평화가 우선이다.

우리도 황장엽 (黃長燁) 의 말을 재탕 삼탕해 북한의 상처를 건드려서 얻을 것이 없다는걸 알아야 한다.

4자회담을 플러스 섬 게임으로 성공시키는 것이 북한을 개혁으로 유도하고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는 단 하나의 길이다.

[김영희 국제문제大記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