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 행남자기 회장. [김도훈 인턴기자]
김 회장이 “직원 60여 명을 어쩔 수 없이 내보내야 할 판이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토로하자 남 총괄대표는 “그런 고민이라면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반응했다. 남 총괄대표는 처음에는 부가가치가 높은 김포자(김 원초) 생산 사업을 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그 사업으로 채용할 수 있는 인력이 10여 명밖에 안 된다는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두 사람은 60여 명이 일할 수 있는 맛김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남 총괄대표는 김 회장이 식품사업엔 문외한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곳에서 생산한 것은 풀무원이 납품받기로 약속했다. 김 회장은 15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세우고 행남식품이라는 계열사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생활도자기 전문업체인 행남자기가 뜬금없이 식품회사를 만든 것이다.
김 회장은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내가 잘 아는 다른 분야의 사업을 했을 것”이라며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어떻게든 일자리를 유지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행남자기가 직원들의 일자리를 위해 만든 전남 목포의 행남식품 맛김 공장 직원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목포=프리랜서 오종찬]
이 공장에서 일하는 김옥희(53·여)씨는 “오갈 데 없었던 종업원의 생계 유지를 위해 세워진 공장”이라며 “모든 직원이 회사의 배려를 알고 지금은 고마움과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공장장인 김승렬 부장은 “맛김 업종은 업체가 난립해 흑자 내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는 생산성이 높아 매년 60여억원의 매출에 2억~3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행남자기가 직원들의 일자리를 위해 만든 전남 목포의 행남식품 맛김 공장 직원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목포=프리랜서 오종찬]
일자리를 지키려는 회사의 노력에 노조도 보답하고 있다. 94년 이연성(현 목포직영점장) 당시 노조위원장이 김영삼 대통령이 주재하는 ‘전국 우수업체 노조위원장 오찬’에 초청됐을 때 일이다. 오찬 중 갑자기 이 위원장이 일어나 “앞으론 청와대에서 저희 행남자기를 써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의 돌발 행동에 모두 긴장했지만 김 대통령은 “노동운동도 이젠 저렇게 해야 한다”며 1000만원어치의 행남자기를 매입했다. 정부는 한때 이 일화를 노사 교육용 사례로 쓰기도 했다. 노조가 기업체의 대형 특판행사를 자발적으로 수주해 와 회사의 경영에 도움을 준 사례도 많다.
김영호 노조위원장은 “외환위기 등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마다 노조는 임금 동결을 해주고, 회사는 최대한 인력 감축을 자제하는 전통이 있다”며 “올 4월에 노사 협상이 있지만 이 같은 전통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행남자기=고 김준형 명예회장이 1942년 설립한 생활도자기 전문생산업체. 김용주 회장이 3대째 경영권을 이어오고 있다. 임직원 520명. 지난해 매출 900억원, 순익 20억원. 계열사로는 행남통상·행남광물정제·행남식품과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