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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박지성 …‘지옥’ 문턱서 허정무팀 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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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의 캡틴’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천금 같은 동점골로 대한민국 축구를 ‘원정팀의 무덤’에서 건져냈다.

해발 1200m가 넘는 고지,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와 질척질척한 그라운드에서 태극전사들은 포기하지 않는 투혼으로 값진 무승부를 얻어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1일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4차전에서 이란과 1-1로 비겼다. 2승2무(승점 8)가 된 한국은 조 1위를 지켰고, 이날 사우디아라비아를 1-0으로 이긴 북한(2승1무1패·승점 7)은 이란(1승3무·승점 6)을 제치고 2위로 뛰어올랐다.

후반 36분 동점골을 터뜨린 박지성이 손을 귀에 대는 골 뒤풀이를 하며 달려 나오고 있다. 이 동작은 원정팀 선수가 골을 넣은 뒤 극성스러운 홈 관중에게 “잘 안들리니 더 떠들어라”며 야유하는 뜻을 담고 있다.(테헤란=연합뉴스)

한국은 정성훈(부산)-이근호(대구)의 ‘빅 앤드 스몰’ 투 톱을 전방에 내세우고 박지성이 왼쪽 미드필더로 나서는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전반 초반은 이란의 페이스였다. 홈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이란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고 있는 쇼자에이(오사수나)의 오른쪽 측면 돌파로 득점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백전노장 이영표(도르트문트)가 노련하게 마크해 큰 위험 없이 초반을 넘겼다.

한국은 전반 30분을 넘어서며 박지성의 몸이 풀렸고 공격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전반 35분부터 기성용(서울)이 세 차례 날카로운 프리킥과 코너킥으로 찬스를 만들었지만 마무리가 정확하지 않았다. 주도권을 잡았다고 판단한 허정무 감독은 전반 40분 정성훈을 빼고 킥이 좋은 염기훈(울산)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전반 41분 기성용이 40m 직접 프리킥을 날렸지만 이란 골키퍼 라마티가 쳐냈다. 1분 뒤에는 염기훈이 오른쪽에서 중앙으로 방향을 틀면서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지만 이 또한 골키퍼에게 막혔다.

그러나 한국의 좋은 흐름은 후반 14분 이란의 결정적인 한 방에 끊어졌다. 아크 정면에서 김정우(성남)의 파울로 이란이 프리킥을 얻었다. 스페인 오사수나에서 뛰고 있는 자바드 네쿠남이 오른발로 감아찬 볼은 한국의 수비벽을 넘어 골문 왼쪽 귀퉁이에 꽂혔다.

실점 직후 한국은 오범석(사마라)이 올려준 볼을 이근호가 회심의 헤딩슛으로 연결했지만 볼은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 나갔다. 후반 20분 기성용의 직접 프리킥도 골키퍼가 쳐냈다.

후반 36분 드디어 한국이 동점골을 빼냈다. 네쿠남에게 프리킥 골을 허용한 비슷한 지점에서 기성용이 프리킥을 얻어냈다. 염기훈이 슬쩍 속임동작을 하고 기성용이 오른발로 감아찼다. 라마티 골키퍼가 쳐낸 볼을 쇄도하던 박지성이 헤딩슛, 굳게 닫혀 있던 이란 골문을 열었다. 포기하지 않고 골을 향해 돌진한 박지성의 투혼이 만들어낸 천금의 동점골이자 A매치 75경기 만에 터뜨린 자신의 10호 골이었다.

한국을 수렁에서 건져낸 박지성은 2분 뒤 박주영(모나코)과 교체됐다. 그는 주장 완장을 이운재에게 채워 주면서 남은 시간 선전을 당부했다. 한국은 역전골을 얻지 못했지만 이란 대표팀이 최근 4년 동안 25승5무를 거뒀던 ‘원정팀의 무덤’ 테헤란에서 값진 승점 1점을 얻었다. 한국 대표팀은 4월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북한과 5차전을 갖는다.

테헤란=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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