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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치는 식약청] 上. "檢·警 수사 설거지하기도 바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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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쓰레기 만두 파동이 확산되던 지난 10일 성남 고향냉동만두 공장에서 식의약청 직원이 압류한 냉동만두들을 꺼내 보이고 있다. [연합]

"만두에 무슨 세균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통보받은 것도 없습니다."

지난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미생물과 관계자가 한 말이다. 불량만두 파동이 시작된 지 닷새가 지나도록 식품 내의 세균을 다루는 식품미생물과가 세균 이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이 불량 만두에 무슨 세균이 있는지 알려주지 않아 모르겠다는 얘기였다. 이에 앞서 10일 밤 한 TV토론에 나온 심창구 식의약청장은 "불량 만두가 '일단' 유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량 만두가 유해하다는 심증만 밝혔을 뿐 과학적 근거는 대지 못했다. 문제가 된 만두에 대한 세균검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거지'에 바빠=소비자들의 눈에는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책임진다는 식의약청이 영 미덥지 못하다. 식품위생의 주무부서로서 먹거리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판정과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의약청이 고유의 전문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바람에 검찰.경찰에 주도권을 빼앗겨 사건이 엉뚱한 곳으로 번져가는 경우도 많다. 공업용 우지 라면, 고름 우유, 포르말린 통조림 등이 대표적이다. 검.경이 사건 차원에서 먼저 터뜨린 것들이다. 또 간장의 발암물질 파동, 수은 참치, 소시지와 햄의 아질산염 문제 등은 소비자단체나 환경단체가 문제를 제기했다.

이 경우 과학적인 뒷받침이 부족하다 보니 소비자들에게 쓸데없는 불안감을 안겨주거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공업용 우지 라면과 포르말린 통조림 파동 때 관련업체들이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단적인 예다.

식의약청 직원 Q씨는 "식의약청은 검찰.경찰.시민단체에서 적발한 사고들을 '설거지'하느라 바쁘다"고 토로했다. 식품안전이 장기 대책보다 사고나 범죄 차원에서 다뤄질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위생 전문가인 강영재 박사는 "검.경은 식품사고를 다룰 때 겉으로 드러난 것을 중시한다"며 "세균.중금속.농약 등에 대한 과학적 검사보다 불결해보이는 용기와 물, 더러운 작업환경에 더 주목한다"고 말했다.

◇부처 간 공조 부족=식의약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식품안전 행정의 일원화를 주장해 왔다. 여러 기관에서 식품안전을 다루다 보니 위생문제에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논리다. 특히 검찰이나 경찰이 대형 식품안전사건에서 주무부서를 따돌림한다고 식의약청은 하소연한다. 전직 식의약청 간부 L씨는 "검찰과 경찰은 식품범죄 수사에 대한 정보를 식의약청에 알려주지 않는다"며 "힘 있는 기관들의 위세에 눌려 식의약청이 나서서 정보를 달라고 요구한 경우도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이번 파동도 마찬가지다. 심 청장은 "경찰에서 공식 통보를 언제 받았느냐"는 질문에 "지난 7일 비공식적으로 정보를 입수했고 9일 공문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부처 간 사전공조가 없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식의약청이 앞으로 공조 요청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제 목소리가 없다=불량 만두 파동에서 식의약청은 경찰 발표를 거의 고스란히 수용했다. 제조과정과 재료가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법규 위반이고, 인체 유해성 여부는 따질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 검사 결과를 중시하던 종래의 식의약청 태도와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기혜 박사는 "이번 불량 만두 파동에서 식의약청은 더 엄밀하고 신속하게 유해성 판정을 내렸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전직 식의약청 간부인 Y씨는 "식의약청은 식품안전 문제를 제기하는 데 주저해선 안 된다"며 "지금 같은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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