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힘' 든든하니 여성 이직 줄더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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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한국 P&G ‘영업부 우먼스 네트워크’회원들이 아이들 장난감을 교환하며 육아 정보를 나누고 있다. 앞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현수.남정수.황진선.이수정.이희정씨. [오종택 기자]

"우리 모임을 만들고 나서 여직원 이직률이 뚝 떨어졌어요. '비빌 언덕'이 그만큼 중요하다니까요."

한국피앤지(P&G) 영업직 여성사원들의 모임인 '우먼스 네트워크'회원들의 자랑이다.

우먼스 네트워크는 2000년 만들어졌다. 10명도 채 안되는 영업직 여직원들이 매년 절반씩 회사를 떠나던 때였다.

"회사에서 먼저 네트워크를 만들어 보라고 했어요. 무슨 문제가 있냐는 거지요."

모임의 리더 격인 황진선(38)이사의 설명이다. 다양한 소비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기업이 직원의 다양성조차 유지하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다급한 판단에서였다.

사실 한국P&G는 여성친화적인 기업으로 꼽을 만하다. 기혼여성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2시간 먼저 출근하고 2시간 먼저 퇴근할 수 있는 '자율시간 근무제도'가 마련돼 있다. 임신 중에는 정기검진을 위해 월 1회 휴가도 쓸 수 있다. 1박 이상의 출장.교육 등을 갈 때는 탁아나 간병비용도 지급한다. 때문에 한국P&G의 여성인력 비율은 40%에 달하고 부장급 이상 간부 중 28%는 여성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영업직 여직원들이 회사에 적응하기 힘들어 했을까.

김현수(29)과장은 "서로 도와주고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다는 게 조직생활에 큰 장애가 됐다"고 회상했다. 특히 각자의 현장으로 현지 출퇴근하는 영업직 직원은 동료들과 정보를 나누고 어려운 일을 의논할 자리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기혼 여직원의 경우 어려운 고비를 혼자 넘기기란 쉽지 않았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던가.

우먼스 네트워크가 생긴 뒤 이들의 어려움은 한결 가벼워졌다.

여성이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남편의 이해와 외조가 필수란 생각에 일년에 한번씩 '패밀리 데이'행사도 연다. 올 5월에도 남편들이 만나 서로 정보와 경험을 나누면서 아내의 일에 대한 이해를 키웠다.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해 여성 선배로부터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법▶업무 노하우▶육아 고민 등에 대한 상담과 조언을 듣는 장도 마련돼 있다. 리더십이나 설득기법 같은 업무에 꼭 필요한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 외부강사를 초청해 함께 강의를 듣기도 했다. 이희정(37)차장은 "여성들이 함께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출산 후 육아문제로 사표를 내려는 여직원을 설득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일도 우먼스 네트워크의 몫이다.

우먼스 네트워크에서는 회사의 문화를 더욱 '생산적'으로 바꾸기 위한 연구도 한다. 지난해에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희롱'에 대한 사례연구를 한 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도 시켰다. 실적이 나쁜 직원에게 "너 하루종일 뭐해? 어디가서 노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도 희롱의 사례. 불임으로 고민하는 직원에게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고 묻는 것도 희롱이다. 흔히 희롱이라면 성희롱만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는 계기를 만들었다.

100여명 영업직 직원 중 현재 우먼스 네트워크 회원은 모두 12명. 그 중 8명이 기혼이다.

남정수(33)차장은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앞으로 영업직에 많이 들어오도록 토양을 튼튼히 만들어 두는 게 현재 우리 모임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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