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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한·미 FTA 더 늦출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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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가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번지면서 지구상의 많은 나라가 큰 경제적 어려움을 맞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달 스위스의 산골에 위치한 다보스에서 여러 나라 정부 관리와 기업인이 모였다. 이 기회에 20여 주요국의 통상장관들이 모였고, 필자도 여기에 참여했다.

다보스에 모인 통상장관들은 다양한 논의를 했지만, 특히 한 가지 뚜렷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즉 “무역은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 해법의 일부”라는 것이다. 또한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적 요구나 특정 산업계의 요구에 따라 보호주의적 요소가 포함되고 있다는 점에 공통된 우려를 표명했다. 그래서 세계무역기구(WTO)가 각국의 보호주의적 조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합의하고, 지난 9일 제네바에서의 회의를 필두로 관련 작업을 시작했다.

무역은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각국의 실물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세계적 유효수요가 줄어들면서 우리 수출도 급감하고 있어 걱정이 크다. 수출을 위한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우리 기업들이 다른 경쟁국들보다 유리하거나 최소한 불리하지 않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상대국이 부당한 무역조치를 취할 때마다 협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적으로 호혜적인 교역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 바로 자유무역협정(FTA)의 기본이다.

한·미 FTA가 지난해 6월 서명된 지 1년 반이 넘게 지났다. 양국 정부가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판단하에 타결한 협상인 만큼, 이제 남은 일은 양국 의회의 승인을 거쳐 이를 발효시키는 일이다. 필자는 한·미 FTA가 더 지체되지 않고 처리되기를 희망한다. 수많은 이유 중에 최근 회자되고 있는 몇 가지만 짚어 보고자 한다.

첫째, 한·미 양국은 조약(또는 협정)의 처리에 관한 입법부의 절차가 다르므로 동시에 절차를 마칠 수 없다. 미국은 하나의 이행법안으로 처리되지만, 우리는 비준동의가 있은 후에 관련 법률의 개정 절차를 따로 취해야 하므로 같이 시작해도 더 긴 시일이 소요된다.

둘째, 차분히 국정을 돌아볼 사정은 이제 신정부 출범 한 달이 된 미국보다 우리가 나은 편이다. 2년차에 들어서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망이 크고, 제18대 국회도 이미 9개월이 되었으므로 제대로 일할 때가 되었다.

셋째, 지원대책의 내용에 대한 판단이다. 한·칠레 FTA의 경우를 보면, 당시 우리 측의 피해 예상이 과다 책정돼 결국에는 집행되지도 못한 예산이 많았다. 한·미 FTA와 관련해서도 정부는 이미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지원 대책을 제시했다. 그 내용이 실제 집행 과정에서 과다할 수도, 부족할 수도 있다. 대책이 부족하다면 추가적인 보완대책을 강구하면 된다.

넷째, 야당에서는 미측이 재협상을 요구해올 수도 있으니 좀 두고 보자고 한다. 재협상은 굴욕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어찌하여 그 가능성을 기다려 보자고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호혜적 교역환경이 우리 국익에 부합하고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데 동의한다면, 한·미 FTA 비준을 계속해 지연시키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득책이 아님을 밝혀두고 싶다. 우리의 절차에 따라 더 이상 지체 없이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것이 상대국인 미국의 처리를 앞당기고 또한 우리의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는 방법이 될 것이다.

김종훈 통상교섭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