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문제전문가들이 본 황장엽씨 회견…귀 기울이되 검증 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황장엽 (黃長燁) 씨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그가 전한 북한실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통일전략에 활용할 것인지 논의가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그의 증언중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지만 피상적으로 알려지거나 의문이 갔던 대목들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는 등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면 신뢰성은 인정하되 유용한 정보로 활용하기 위해선 보다 철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본지는 북한의 전쟁도발 가능성을 짚어본 데〈12일자 5면〉 이어 黃씨가 전한 북의 정치.경제등의 실상을 재음미해 본다.

◇정치 = 민족통일연구원 서재진 (徐載鎭) 통일정책실장은 黃씨가▶자력갱생 사회체제의 붕괴라는 측면과▶전체주의적 체제강화라는 일견 상충되는 발언을 함으로써 다소 혼란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徐실장은 "북한에서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실생활에서 질서가 많이 이완돼 정부당국의 지시가 아래로 먹혀들지 않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라고 풀이했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유길재 (柳吉在) 교수는 '김정일이 모든 정책을 독단적으로 결정한다' 는 黃씨의 말은 현실성이 다소 결여된 진술이라고 진단했다.

김정일에게 권력이 있다는 것과 모든 사업을 직접 결정한다는 사실은 별개라는 것이다.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 (高有煥) 교수는 黃씨가 언급한 시.군당 간부이상의 김정일 직보체제에 대해 "실무는 김정일세대가 맡은 만큼 계통은 실무라인이지만 원로들이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있는데 따른 과도기적 정책결정 채널" 이라고 분석했다.

◇경제 = 북한 경제전문가들은 黃씨가 경제를 책임졌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黃씨의 발언에 대해 신중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개발연구원 고일동 (高日東) 연구위원은 '개혁.개방과 전쟁모험의 기로에 선 북한이 전쟁모험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는 黃씨 주장과 관련, "군사적 강경 자세와 경제적 개방.협력 추진은 별개의 문제" 임을 강조했다.

북한이 강경하게 나온다 해서 경제교류까지 않겠다는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高위원은 "북한의 강경자세가 체제존립과 외부지원을 유도하는 중요한 '협상카드' 용 제스처일 수 있다" 고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董龍昇) 수석연구원도 대외경제정책에 부정적인 黃씨의 진술을 "오히려 북한이 개혁.개방 문제를 놓고 심각히 고민중이며 개방의 필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 이라고 해석했다.

董연구원은 개혁.개방과 대외 강경분위기는 대립개념은 아니지만 밀접히 연관돼 있는 만큼 대외경제정책의 수위조절에 고심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의 변화속도는 대내문제와 함께 대미 (對美) 관계를 축으로 하는 대외환경 및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로 풀려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될 문제라는 것이다.

◇핵무기 =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상식' 이라는 黃씨의 진술에 대해 정부의 한 당국자는 "한.미 정보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정도의 추상적 언급" 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소형 핵무기 1~2개를 제조할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핵무기개발로 연결시켰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민족통일연구원 정영태 (鄭永泰) 연구위원은 "黃씨의 핵보유 진술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긴 하지만 이를 전제로 대북정책을 견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고 밝혔다.

鄭위원은 특히 "IAEA특별사찰에 앞서 북한핵문제는 군사적 대응보다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KEDO) 의 틀안에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며 "이를 위한 한.미간 확고한 공조체제 유지가 필수불가결하다" 고 강조했다.

◇대남전략 = 관계당국은 黃씨의 진술이 향후 남북대화나 협상진행 과정에서 북한의 전략.전술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완전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대남정책관련 종사자들의 성향이나 실세.허세여부 판단 등은 향후 우리정부의 대북 전략 수립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黃씨의 증언중 일부는 다소 편향된 시각에서 현실적인 북한의 입장변화를 소홀히 한 부분도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북한이 남한기업의 투자를 원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북한문제전문가 이항구 (李恒九) 씨는 "黃씨가 아직 남한체제를 잘모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그의 증언을 음미해야 할 것" 이라며 "전쟁에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자세도 좋지만 남북간의 대화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 강조했다.

김성진 전문기자.이영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