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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히트상품 ‘빅뱅’ 만든 양현석 YG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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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빅뱅의 성공과 함께 가요계가 대중적 관심의 복판에 서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YG엔터테인먼트 제공]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한 빌딩. 10~20대 초 여성 20여 명이 입구에 진을치고 있다. 기획사 앞다운 풍경이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10대 소녀 2명이 꾸벅 인사한다. 방금 외국어 수업을 끝낸 YG 연습생이다. 뒤쫓아오던 홍보담당자가 ‘누구에게나 인사 잘하기’가 연습생 수칙 1호라고 귀띔했다. 자그마한 키에 평범한 외모의 소녀들. 순간적으로 ‘역시 YG는 외모보다 실력이군’ 했으니,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빌딩 7층에 양현석(39) YG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사무실이 있다. 1990년대를 풍미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댄서 겸 래퍼로 출발해 지금은 가요계 제왕으로 변신한 그다. 한때 서태지의 명성에 가려 만년 2인자 같았지만, 이제는 SM의 이수만, JYP의 박진영과 어깨를 겨룬다. 그가 제작한 ‘빅뱅’은 2008년 가요계는 물론이고, 대중문화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등극했다. 2007, 2008 두 해 동안 470억원을 벌어들였다.

미니멀한 가구와 조명, 컴퓨터 등이 디자이너 사무실 같은 인상이다. 한쪽에는 그가 취미로 모으는 피겨들이 있다.인터뷰 시간은 오후 5시. “매일 새벽 5시에 자고 낮 2시에 일어난다”니 사실상 아침인터뷰다.

#새로운 문화를 빨아들이는 음악으로 성공하다=빅뱅은 아이돌 시장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가령 동방신기가 강남, 훈련된 모범생, 꽃미남 이미지라면 빅뱅은 서민적이고 길거리풍, 프리 스타일이다. 거리의 불량스러움, 음지의 기운을 담아낸 ‘다크 아이돌’(음악평론가 김작가)이다. 남자 가수로는 이례적으로 패션 스타일도 선도했다. 팀 안에서 작사·작곡이 가능하며 다세대에 어필하는 ‘아티스트 아이돌’로도 주목받았다.

“빅뱅을 처음 만들었을 때 아이돌이라고 말하기 창피했어요. 아이돌 하면 멋진 외모, 딱딱 각 맞춰 춤추는 이미지인데, 우리 애들은 안 그랬으니까. 하지만 차별화된 아이돌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생각했죠. 그간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남녀노소 모두 즐기고 센세이셔널한 그룹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무엇보다 빅뱅의 음악은 새로운 문화를 빨아들이는 수단으로서의 음악입니다.”

음악 하나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패션과 스타일이 함께 있는 음악을 시도했고, 그게 ‘문화현상’으로 ‘터지는’ 요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에게 빅뱅은 “자식 같은 존재”다. 빅뱅의 숙소와 그의 집이 위·아래층에 있을 정도로 ‘가족적’이다. “멤버끼리 선의의 경쟁이 치열합니다. 한창 놀 나이인데 가라오케도 안 가고 술도 잘 안 마셔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지용이(지드래곤)가 곡 쓰고 가사 써서 제가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과연 얘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저도 흥미로워요.”

#가수가 되기 전에 인간이 돼야= YG의 연습실에는 ‘가수가 되기 전에 인간이 되어라’는 구호가 붙어 있다. “가수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에요. 가수는 계속 부족하고 목말라야 해요.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이거든요.”

헤비급 여성들로 이뤄진 빅마마 등 때문에 ‘외모는 안 보고 실력만 본다’는 세간의 평도 생겼다. “하하, 저희도 외모를 봐요. 기준이 다를 뿐이죠. 저희는 다정다감한 외모, 못 생겨도 정 가고 끼 있는 외모를 좋아해요. 대성이도 처음엔 여드름 박사에 촌스러운 얼굴인데, 절 보고 씩 웃는 순간 순수함에 반해 발탁했고요. 곧 선보일 ‘여자 빅뱅’도 기존 여자 그룹과는 다를 겁니다. 제가 개인적으로도 쭉쭉빵빵 스타일을 안 좋아해요(웃음).”

빅뱅은 올가을 일본 유니버설과 계약하고 일본 활동을 시작한다. 빅뱅이 직접 주인공 캐릭터로 나오는 게임도 개발 중이다.

#내 본분은 기획자= “생각해 보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제 역할은 기획자인 거 같아요. 록 솔로앨범 내려던 서태지를 꾀어 그룹 만들고, 이주노를 영입했죠. 그땐 스타일리스트가 없어서 제가 서태지를 이끌고 이태원을 뒤져 옷을 사다 찢어 붙혔죠. 뮤지션을 만나면 이들을 어떻게 매치시키고 꾸밀까, 춤과 옷은 어떻게 할까 떠올리니, 천성이 기획자 같아요.”

그는 YG 음악의 총괄 프로듀서로, 음악적 역량도 과시하고 있다. “음악은 독학, 철저히 실전에서 익혔어요. 댄서니까 춤추면서 음악을 많이 들었고요. 해외 최신 음악을 따라잡기 위해, 7년째 일주일에 한 번씩 클럽 디제이로 서고 있어요.”

#재미를 좇는 영원한 아이들=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98년 제작자로 변신했다. 합정동 반지하 남의 사무실 한쪽에서 시작했지만 “12년간 단 한번도 지난해보다 낫지 않은 해가 없었다”고 하니 대단한 성과다. “원래 장사에 재주 있는 편”인데다가 “서태지에게 배운 철저한 자기 관리”도 큰 도움이 됐다.

“제가 싫어하는 게 헝그리 정신이에요.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재미를 모르는 기계가 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죠. 우리 YG는 그냥 회사라기보다 음악이 재미있는 장난이자 놀이인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패밀리예요. 이런 재미가 사라지고 돈이 앞서고,우리가 꼰대가 되는 순간 음악은 끝이라고 생각해 영원히 아이들이고 싶은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사실 이것이야 말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90년대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아닌가. 대학졸업장이나 세상이 정해놓은 길 따윈 상관말고 네 멋대로, 네 삶을 찾으라는 것. 그것이 성공이라는 것. 공고를 나온 댄서 출신 사장님은 “시장을 읽는 빼어난 감각의 프로듀서 겸 사업가”(음악평론가 임진모)로 대중음악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신화는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이다.

 양성희 기자

YG엔터테인먼트=90년대 힙합전사 양현석의 기획사로 지누션·휘성·원타임·세븐·빅마마·거미·렉시 등을 선보였다. 직원 상당수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양군(양현석의 별명)’ 팬 출신이다. 최고 히트상품 빅뱅은 기존 YG 힙합 스타일에 아이돌 코드를 섞은 YG의 첫 아이돌 그룹. 13세 동갑으로 YG 오디션에 붙은 지드래곤·태양의 두오에서 출발했다. 나머지 멤버를 뽑는 과정을 TV 리얼리티쇼로 방영해 사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빅뱅은 최근 단독 콘서트에서 5만2000석을 매진시켜 ‘단기간 최고 수익’을 올렸다. 책 『세상에 너를 소리쳐』도 10일 만에 15만 부가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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