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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95>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0호 16면

프로골퍼 신지애. 5일 호주에서 시작된 ANZ 레이디스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한 그녀의 이름 뒤에 익숙하게 따라오던 뭔가가 없었다. 괄호 열고 ‘아무개 마트’라고 쓸 필요가 더 이상 없었던 거다. 2008년을 끝으로 그 회사와 스폰서 계약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모자

그래서 그는 대회 첫날 글씨고 그림이고 아무것도 없는 어색한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신지애 모자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기 위해선 연간 10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게 주위의 얘기다.

이처럼 스타는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미디어 노출이 잦을수록, 그 무대가 클수록 값은 더 나간다. 미국프로풋볼(NFL)의 한국계 스타 하인스 워드가 몇 년 전 어머니의 나라를 찾아올 때 입었던 티셔츠. 명품 정장이라도 입고 나타날 줄 알았던 그가 소박한 흰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을 때 살짝 놀랐지만, 그 가슴팍을 온통 차지한 모 은행의 이름을 보고는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그 빈틈없고 뜨거운 마케팅 경쟁을 실감해서였다.

프로스포츠의 스타가 이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은 얼마나 더 큰 광고판인가. 대통령은 다른 대중스타처럼 상업광고에 등장하진 않지만, 신문과 방송에서 그 모습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는, 어쩌면 ‘볼 수밖에 없는’ 아이콘이다. 노출이 잦은 모델로 따지면 최고 가치의 모델이다.

지난 2일자 중앙일보 8면.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이 커다랗게 실렸다. 그 전날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연수원 운동장에서 장·차관 워크숍 참석자들과 아침운동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침운동에 어울리게 활기찬 모습과 표정,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처럼 자리 잡은 목도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목도리가 눈에 띄네…’ 하고 생각 없이 시선을 돌리려다가 뭔가 이상해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모자 때문이었다. 그 흰 모자 한가운데 선명히 보이는 로고에 시선이 꽂히자 또 한번 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아아… 그건 외국 브랜드의 스포츠용품사 로고였다. 그리고 모자 챙 옆에 귀 가리개가 살짝 보이는 걸로 봐서 골프 모자였다. 세계 최대의 그 스포츠용품 회사, 타이거 우즈와 김연아는 물론 겨울올림픽에서 크로스컨트리 꼴찌를 하는 아프리카 선수의 가슴팍까지 차지해 버리는 그 회사의 로고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광고 모델, 그 모델이 쓰고 있는 모자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용품사는 역시 대단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원했건, 아니면 다른 누가 챙겨 줬건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 용품사의 모자를 써야 했던 속사정은 아쉽다.

굳이 스포츠용품사의 모자여야 했다면 외국 기업이 아닌 국내 기업의 것이었다면 좀 더 좋았을 뻔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은 성화 최종 주자를 놓고 말이 많았다. 중국은 일부의 비난까지 감수해가면서 체조선수 출신 리닝을 최종 주자로 지정했고 성화대에 불을 붙이기까지 유난히 긴 시간을 끌었다. 그가 만든 중국 브랜드 스포츠용품 업체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라는 해석이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모자에서 외국 브랜드를 보고 나니, 그런 해석에 꿈쩍도 하지 않은 중국의 막무가내식 애국주의가 오히려 부럽다. 그날 대통령의 모자는 분명 신지애의 볼품없는 모자보다 더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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